오늘은 인연에 관한 주옥같은 시모음을 포스팅합니다.
인연설 1 / 만해 한용운 시인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사랑한다는 말은 안 합니다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 사랑의 진실입니다
잊어버려야 하겠다는 말은
잊어버릴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정말 잊고 싶을 때는 말이 없습니다
헤어질 때 돌아보지 않는 것은
너무 헤어지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웃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과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표정은 이별의 시작입니다
떠날 때 울면 잊지 못한다는 증거요,
뛰다가 가로등에 기대어 울면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인연설 2 / 만해 한용운 시인
함께 영원히 있을 수 없음을 슬퍼 말고
잠시라도 함께 있을 수 있음을 기뻐하고
더 좋아해 주지 않음을 노여워 말고
이만큼 좋아해 주는 것에 만족하고
나만 애태운다 원망치 말고
애처롭기까지 한 사랑을 할 수 있음을 감사하고
주기만 하는 사랑이라 지치지 말고
더 많이 줄 수 없음을 아파하고
남과 함께 즐거워한다도 질투하지 말고
그의 기쁨이라 여겨 함께 기뻐할 줄 알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 일찍 포기하지 말고
깨끗한 사랑으로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나는 당신을 그렇게 사랑하렵니다
꽃잎 인연 / 도종환 시인
몸 끝을 스치고 간 이는 몇이었을까
마음을 흔들고 간 이는 몇이었을까
저녁하늘과 만나고 간 기러기 수만큼이었을까
앞강에 흔들리던 보름달 수만큼이었을까
가지 끝에 모여와 주는 오늘 저 수천 개 꽃잎도
때가 되면 비 오고 바람 불어 속절없이 흩어지리
살아 있는 동안은 바람 불어 언제나 쓸쓸하고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고 헤어지는 일들도
빗발과 꽃나무들 만나고 헤어지는 일과 같으리
인연 / 황인숙 시인
맨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모르는 사이였지
그 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려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한 그 순간
나는 키가 작아 앞줄에 앉고
너는 키다리,
맨 뒷줄이 네 자리
아, 우리는 어떻게
단짝이 됐을까!
키다리 친구들과 둘러서서
바람이 가만가만 만지는 포플러나무 가지처럼
두리번거리다 나를 보고
너는 싱긋 웃으며 손짓한다
너를 보면 내 코는 절로 벌름벌름
내 입은 벙글벙글.
당신과 나의 인연이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다 / 이채 시인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구슬이라도
가슴으로 품으면 보석이 될 것이고
흔하디 흔한 물 한 잔도
마음으로 마시면 보약이 될 것입니다
이웃이 있는 자는
필시 사랑의 향기가 있을 것이고
이웃이 없는 자는
필시 마음의 가시가 있을 터
풀잎 같은 인연에도
잡초라고 여기는 자는
미련 없이 뽑을 것이고
꽃이라고 여기는 자는
알뜰히 가꿀 것입니다
당신과 나의 만남이
꽃잎이 햇살에 웃듯
나뭇잎이 바람에 춤추듯
일상의 잔잔한 기쁨으로
서로에게 행복의 이유가 될 수 있다면
당신과 나의 인연이
설령 영원을 약속하지는 못할지라도
먼 훗날 기억되는 그 순간까지
변함없이 진실한 모습으로
한 떨기 꽃처럼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다
해당화 / 박태인 시인
나 먼저 저승 가서 아침 둑길 따라 걷다
그대 생각나면 어이하나
섰다 서성이다 함께 머물렀던 세월에 마냥 떠돌다
나 없이 살아온 인연 나 없이 살아갈 인연 행복하라고 활짝 피라고
나 먼저 저승 가서 어느 물가
연붉은 그대 만나면.
귀한 인연이길 / 유혜정 시인
진심 어린 마음을 주었다고 해서
작은 정을 주었다고 해서
그의 거짓없는 맘을 받았다고 해서
그의 깊은 정을 받았다고 해서
내 모든 것을 걸어버리는
깊은 사랑의 수렁에 빠지지 않기를
한동안 이유없이 연락이 없다고 해서
내가 그를 아끼는 만큼
내가 그를 그리워하는 만큼
그가 내게 사랑의 관심을 안 준다고 해서
쉽게 잊어버리는
쉽게 포기하는
그런 가볍게 여기는 인연이 아니기를
이 세상을 살아가다 힘든 일 있어
위안을 받고 싶은 그 누군가가
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이 세상 살아가다 기쁜 일 있어
자랑하고 싶은 그 누군가가
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이 세상 다하는 날까지
내게 가장 소중한 친구
내게 가장 미더운 친구
내게 가장 따뜻한 친구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이가
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이 세상 다하는 날까지
서로에게 위안을 주는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
따뜻함으로 기억되는 이가
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지금의 당신과
나의 인연이
그런 인연이기를
인연 / 피천득 시인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인연 / 도종환 시인
너와 내가 떠도는 마음이었을 때
풀씨 하나로 만나
뿌린 듯 꽃들을 이 들에 피웠다
아름답던 시절은 짧고
떠돌던 시절의 넓은 바람과 하늘 못 잊어
너 먼저 내 곁을 떠나기 시작했고
나 또한 너 아닌 곳을 오래 헤매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도 가없이 그렇게 흐르다
옛적 만나던 자리에 돌아오니
가을 햇볕 속에 고요히 파인 발자국
누군가 꽃 들고 기다리다 문드러진 흔적 하나
내 걸어오던 길쪽을 향해 버려져 있었다.
낙엽 한 장 / 오봉옥 시인
배낭에 따라붙은 낙엽 한 장
그냥 떼어버릴 일 아니다
그 나무의 전생과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죽어가면서도 마지막으로 한 번
손을 내밀어보는 이유가
필시 또 있었을 것이니
스침에 대하여 / 송수권 시인
직선으로 가는 삶은 박치기지만
곡선으로 가는 삶은 스침이다
스침은 인연, 인연은 곡선에서 온다
그 곡선 속에 슬픔이 있고 기쁨이 있다
스침은 느리게 오거나 더디게 오는 것
나비 한 마리 방금 꽃 한 송이를 스쳐가듯
오늘 나는 누구를 스쳐가는가
저 빌딩의 회전문을 들고 나는 것
그것을 어찌 스침이라 할 수 있으라
스침은 인연, 인연은 곡선에서 온다
그 곡선 속에 희망이 있고 추억이 있고
온전한 삶이 있다
그러니 스쳐라 아주 가볍게
천천히
인연 / 피천득 시인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인연 / 복효근 시인
저 강이 흘러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다면
생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텐데
바다로 흘러간다고 하고 하늘로 간다고도 하지만
시방 듣는 이 물소리는 무엇인가
흘러간다면
저기 아직 먹이 잡는 새들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 것인가
은빛 배를 뒤채는 저 물고기들은
또 어디로 흘러간 물의 노래인가
공이라 부를 건가
색이라 부를 건가
물은 거기 서서 가지 않고 흐르는데
내 마음속으로도 흐르는데
저 나무와 새와 나와는 또 어디에 흘러
있는 것인가
인연서설 / 문병란 시인
꽃이 꽃을 향하여 피어나듯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묵묵히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다
물을 찾는 뿌리를 안으로 감춘 채
원망과 그리움을 불길로 건네며
너는 나의 애달픈 꽃이 되고
나는 너의 서러운 꽃이 된다
사랑은
저만치 피어 있는 한 송이 풀꽃
이 애틋한 몸짓
서로의 빛깔과 냄새를 나누어 가지며
사랑은 가진 것 하나씩 잃어 가는 일이다.
각기 다른 인연의 한 끝에 서서
눈물에 젖은 정한 눈빛 하늘거리며
바람결에도 곱게 무늬지는 가슴
사랑은 서로의 눈물 속에 젖어 가는 일이다
오가는 인생길에 애틋이 피어났던
너와 나의 애달픈 연분도
가시덤불 찔레꽃으로 어우러지고,
다하지 못한 그리움
사랑은 하나가 되려나
마침내 부서진 가슴 핏빛 노을로 타오르나니
이 밤도 파도는 밀려와
잠 못 드는 바닷가에 모래알로 부서지고
사랑은 서로의 가슴에 가서 고이 죽어 가는 일이다.
이 순간 / 피천득 시인
이 순간 내가
별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속에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인연 / 정채봉 시인
나는 없어져도 좋다
너는 행복하여라
없어진 것도 아닌
행복한 것도 아닌
너와 나는 다시 약속한다
나는 없어져도 좋다
너는 행복하여라
인연 / 윤보영 시인
생각만 해도
늘 기분 좋은 그대!
그대는
전생의 잃어버린
내 한 조각 아닐까
후회 / 피천득 시인
산 길이 호젓다고 바래다준 달
세워 놓고 문 닫기 어렵다 거늘
나비같이 비에 젖어 찾아온 그를
잘 가라 한 마디로 보내었나니
눈물 / 피천득 시인
간다 간다 하기에
가라 하고는
가나 아니가나
문틈으로 내다보니
눈물이 앞을 가려
보이지 않아라
연가 / 피천득 시인
훗날 잊혀지면
생각하지 아니 하리라
이따금 생각나면
잊으리도 아니하리라
어느 날 문득 만나면
잘 사노라 하리라
훗날 잊혀지면
잊은 대로 살리라
이따금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살리라
어느 날 문들 만나면
웃으며 지나치리라
선물 / 피천득 시인
너는 나에게 바다를 선물하였구나
네가 준 소라 껍질에서
파도 소리가 들린다
너는 나에게 산을 선사하였구나
네가 준 단풍잎 속에서
붉게 타는 산을 본다
너는 나에게 저 하늘을 선사하였구나
눈물 어린 네 눈은
물기 있는 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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