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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취미생활 잔치마당/문학

[시문학] 김선우 시인의 깨끗한 식사

by meta-verse 2025.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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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김선우 시인깨끗한 식사에 대해 포스팅합니다. 


깨끗한 식사 / 김선우 시인

 
어떤 이는 눈망울이 있는 것들 차마 먹을 수 없어 채식주의자가 되었다는데 내 접시 위의 풀들 깊고 말간 천 개의 눈망울로 빤히 나를 쳐다보기 일쑤, 이 고요한 사냥감들에도 핏물 자박거리고 꿈틀거리며 욕망하던 뒤안 있으니 내 앉은 접시나 그들 앉은 접시나 매일반. 천년 전이나 생식을 할 때나 화식을 할 때나 육식이나 채식이나 매일반. 
 
문제는 내가 떨림을 잃어간다는 것인데, 일테면 만년 전의 내 할아버지가 알락꼬리암사슴의 목을 돌도끼로 내려치기 전, 두렵고 고마운 마음으로 올리던 기도가 지금 내게 없고 (시장에도 없고) 내 할머니들이 돌칼로 어린 죽순 밑둥을 끊어내던 순간, 고맙고 미안해하던 마음의 떨림이 없고 (상품과 화폐만 있고) 사뭇 괴로운 포즈만 남았다는 것.
 
내 몸에 무언가 공급하기 위해 나 아닌 것의 숨을 끊을 때 머리 가죽부터 한 터럭 뿌리까지 남김없이 고맙게, 두렵게 잡숫는 법을 잃었으니 이제 참으로 두려운 것은 내 올라앉은 육중한 접시가 언제쯤 깨끗하게 비워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 도대체 이 무거운, 토막 난 몸을 끌고 어디까지!

 
※ 현대인의 식사에 대한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으로, 식물과 동물을 인간과 같이 눈과 욕망이 있는생명체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세번째 연에서 화자와 음식의 처지를 역지사지하는 마음을 보여주면서 식사에 대한 성찰을 하고 있다.
 
각 연이 산문형식이지만 서술어 없이 종결되어 간결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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