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음악 - 조유진 기자
우리는 많은 방법으로 노래를 듣는다. 커다란 공연장에서 해당음악의 팬인 여러 사람과 어울려, 음악감상실 또는 카페 같은 공간에서 불특정 타인과 함께, 내 방에서 이어폰으로 혼자..., 같은 노래도 다르게 여러 번 경험할 수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음악을 감상하다 보면 자신의 음악 취향을 깨닫기도 한다. 어떤 방법으로 듣느냐에 따라 해당 노래에 대한 생각이 변할 가능성도 크다.
다른 모든 예술과 마찬가지로 음악 역시 듣는 사람의 현재 상태와 기분에 따라 그 감상이 크게 좌우된다. 20세기 초, 독일에서 활약한 음악 평론가 파울 베커는 "예술작품이 나에게 작동하는지 아닌지는 오로지 그것이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 새로워 보이는 것도 실은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것을 어느 순간 의식 하기 시작했을 뿐, 예전부터 어둠 속에 졸고 있던 내면의 영역에 빛이 닿았을 뿐이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 말에 따르면 우리가 좋아하는 노래를 만나게 되는 것은 운명이나 우연이 아니라, 내 안에서 스스로 좋아할 수 있는 노래와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일과 같다. 이미 내 안에 여러 판단 기준과 조건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들을만한 노래가 없다고 느낀다면 한번 생각해 보자. 어쩌면 내 안에 내가 좋아할 수도 있는 음악과 연결될 마음의 여유나 판단기준이 줄어든 것 아닐까?
[사견]
음악은 소리에서 진화된 영역으로 공기와 같은 존재이다. 음악은 우리의 감정을 반영하기도 하고 감정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필자의 경우 젊은 시절 사법고시에 실패할 때마다 행진곡을 듣곤 하면서 정신적인 멘붕상태에서 벗어나곤 했는데, 지금도 다양한 방법으로 음악을 이용해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어떤 미사여구보다도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음악이 최고가 아닌가 생각한다.

당연한 일들 /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아침에 해가 뜨는 데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광활한 우주 안 억겁의 지구 역사 속에 존재가 있어야 할 필연도 없고, 오늘처럼 내일이 나에게 다시 찾아올 거라는 약속도 없다. 그건 누군가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일도 아니며,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참 많은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하늘에 뭉게구름이 떠있고, 골짜기에 졸졸 물이 흐르고, 소복이 쌓인 눈 아래 푸른 싹이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 내 의지가 아니어도 호흡을 하고 맥박이 뛴다는 기이한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여겨 왔다. 이 모든 일이 결코 약속한 것도, 보장된 것도 아닌데도.
만약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햇살이 한 줌도 없다면, "날이 흐리네, 비가 오려나"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길 것이다. 수일이 지나도 세상이 여전히 어두컴컴하고, 바람 한 점이 없고, 아무 일도 시작되지 않는다면 어떨까. 당연함의 공식이 깨지면서 겪어본 적 없는 두려움을 느끼고 무심히 지나쳤던 장면들, 따분하게 느끼기도 했던 일상을 그리워하리라. 익숙함은 생의 신비를 아무렇지 않게 만들어 버리는 걸까. 사방에서 일어나는 숱한 기적에 대해 점점 무뎌진다. 가까이, 오래 머문 것일수록 더욱 그렇다. 매일 안부를 묻는 가족과 친구들, 출근길에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늘 그 자리에 있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세상은 수많은 우연의 합으로 오직 지금에만 머문다. 그리고 대부분의 일은 먼바다에서 밀려오는 물결처럼 나의 통제 밖에 있다.
소중함이란 이런 사실을 깨달아야만 싹트는 감정이 아닐까. 익숙한 것들에게서 당연함을 지우고 이유 없이 일어난 삶의 기적을 촘촘히 꿰어 오늘을 채워본다. 나에게 내일이 주어질 약속이 없더라도, 다시 눈을 떠 환한 세상을 맞을 수 있기를, 사랑하는 이들을 마주 볼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도한다. 어제와 오늘이 그러하듯 절대로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견]
아름다운 하늘과 나무 등 오늘과 같은 내일이 당연히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대부분 하고 살지만, 필자는 이미 예전부터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언제든지 올 수 있는 죽음이라는 자체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된 지 오래이다. 이런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종교 등이 있지만, 무교인 필자로는 또 다른 방법이 무엇인가를 고뇌한 결과..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것을 느끼고 깨달아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그 실천방안으로 인문학을 통해 성찰해 나가야 한다고 보고 인문학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부터 사회과학에 대한 공부는 어느 정도 되어있었으나 인문학에 대한 공부가 제대로 안 돼 있어서 살아가는데 여러 애로사항이 많았는데, 뒤늦게나마 인문학 공부를 하게 된 것은 만시지탄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었다. 요즘은 법학이나 경제학 같은 사회과학보다는 시와 소설 등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고 흥미도 더 있는 편이다. 거기에 더해 음악까지 가미해 나가니 궁극적인 삶의 목표인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이라고 느끼는 곳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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