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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진달래꽃 / 김소월 시인 (해설 및 해석)

by meta-verse 2025.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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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에 대해 포스팅합니다.


 

진달래꽃 / 김소월 시인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진달래꽃 / 김소월 시인 해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나 보기가 역겨워는 가정법 표현으로 만일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상황이 오면 붙잡지 않고 체념하면서 보내준다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지 말았으면 하는 반어법을 사용하고 있다. 즉, 사랑하는 이가 어쩔 수 없이 떠나더라도 원망하지 않고 예의를 갖추어 절제된 슬픔으로 조용히 말없이 보내주겠다는 다짐이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진달래꽃"은 화자의 분신으로 임에 대한 화자의 사랑을 표현한 것이고,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는 떠나는 임에 대해 사랑의 꽃을 뿌린다는 뜻으로 공덕을 기리는 불교의 산화공덕(散花功德) 사상이 깔려있다. 즉, 임이 가는 길에 꽃을 뿌린다는 것은 현실을 체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이별의 길조차도 아름답게 꾸미겠다는 헌신적 사랑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평안북도 영변의 약산은 시인의 자라난 고향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담겨있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꽃을 밟으면서 떠나가라는 절제된 자기희생을 통해 이별의 슬픔을 숭고한 사랑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마음은 밟히는 것만큼 아프다는 것을 반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이별할 시에 죽어도 눈물 흘리지 않겠다는 것은 이별의 슬픔을 극복하면서 이를 승화시키는 모습이면서 한편으로는 임을 못 가게 붙들고 싶은 마음도 강렬하다는 것도 내포되어 있다.)
 
 
※ 진달래꽃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 관한 단순한 의미의 시가 아닌, 이루지 못할 슬픈 사랑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 사랑하는 사람이 떠남에도 미워하거나 원망 없이 순종과 헌신의 마음으로 고이 보내주는 한국적 한의 정서를 노래하고 있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즉, 겉으로는 담담하지만 속마음은 슬픔으로 가득 찬 화자의 절제된 이별 감정을 민요적 리듬을 이용해서 표현한 사랑의 본질을 꿰뚫는 명시라고 할 수 있다. 

 
※ 김소월(1902.09.07.~1934.12.24.)
평안북도 구성군 서산면 왕량동에서 무녀독남으로 출생하였으며,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시인으로, 본명은 김정식이고 호는 소월이다.
 
김소월은 남산보통학교, 오산학교 중학부, 배재고보를 거쳐 1923년 일본 도쿄상과대학으로 유학 갔으나 관동 대지진으로 중퇴 후 귀국하였다.
 
1920년 오산학교 재학 시 스승이던 김억의 도움으로 <창조>에 "낭인의 봄" 등을 발표하여 문단에 등단하였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는 시기는 1922년 <개벽>을 통해서이다.
 
그의 대표작인 "진달래꽃", "엄마야 누나야", "금잔디" 등이 이 무렵에 발표된 시들이다. 1923년에는 "못잊어",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등을 발표하였으며, 1924년에는 "산유화", "밭고랑 위에서", "생과 사" 등을 발표하였다. 
 
1925년에는 생전의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을 출판하였다. 진달래꽃에는 표제작 "진달래꽃"을 비롯하여 "산유화", "초혼" 등이 수록되어 있다. 
 
김소월은 향토적 소재를 이용한 민요조의 서정시인으로 유명하였지만. 당시 일제치하에서 현실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한 시인이다. 예를 들면 1928년에 발표한 "옷과 밥의 자유"는 상징을 통해 우리 민족의 당시 실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 
 
한편 김소월은 시를 쓰면서 광산과 신문사 지국 등을 경영하였으나 일제의 방해 등으로 실패하여 경제적으로 곤궁하였고, 빈곤에 시달리다 1934년 12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1939년 스승인 김억의 주관하에 시집인 "소월시초"가 발간되었고, 1968년 3월 한국일보사에서 남산에 "소월시비"를 세웠으며, 1987년에는 문학사상사에서 "소월시문학상"을 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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