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가을에 관한 시모음을 포스팅합니다.
가을이 와 / 나태주 시인
가을이 와 나뭇잎이 떨어지면
나무 아래 나는
낙엽 부자
가을이 와 먹구름이 몰리면
하늘 아래 나는
구름 부자
가을이 와 찬바람이 불어오면
빈 들판에 나는
바람 부자
부러울 것 없네
가진 것 없어도
가난할 것 없네.

가을 안부 / 나태주 시인
골목길이 점점 환해지고
넓게 보인다
도시의 건물과 건물 사이가
점점 성글어진다
바람 탓일까
햇빛 탓일까
아니면 사람 탓일까
그래도 섭섭해하지 말자
우리는 오래된 벗
너 거기서 잘 있거라
나도 여기 잘 있단다

가을은 그저 줍는 달 / 박노해 시인
가을은 그저 줍는 달
산길에 떨어진 알밤을 줍고
도토리를 줍고 대추알을 줍고
가을은 햇살을 줍는 달
물든 잎새를 줍고 가을 편지를 줍고
가슴에 익어 떨어지는 시를 줍고
그저 다 익혀 내려주시는
가을 대지에 겸허히 엎드려
아낌없는 나무를 올려다본다.
그 빈 가지 끝
언제 성난 비바람이 있었냐는 듯
높고 푸른 하늘은 말이 없는데
그래,
괴로웠던 날들도 다 지나가리라고
다시 일어서 길을 걷는 가을
가을은 그저 마음 줍는 달

가을 길을 걷고 싶습니다 / 이정순 시인
햇살이 다정히
잎을 쓰다듬는 가을
심술쟁이 바람은
가을을 어디로 보내려 합니다.
국화향기 그윽한 어느 카페에서
물 위에 둥둥 떠 갈
길 잃은 낙엽의 슬픔이 젖어듭니다.
왠지 마지막 이별인 듯 떠나지 못하고
물 위에 이리저리 헤매며
외로움에 가을노래를 부릅니다.
이런 날은 누구라도 만나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가을 길을 걷고 싶습니다.

가을밤 / 도종환 시인
그리움의 물레로 잣는
그대 생각의 실타래는
구만리장천을 돌아와
이 밤도 머리맡에 쌓인다.
불을 끄고 누워도
꺼지지 않는 가을밤
등잔불 같은 그대 생각
해금을 켜듯 저미는 소리를 내며
오반죽 가슴을 긋고 가는
그대의 활 하나
멈추지 않는 그리움의 활 하나
잠 못 드는 가을밤
길고도 긴데
그리움 하나로
무너지는 가을밤

가을의 문턱 / 문재학 시인
애처로운 매미소리 잦아지고
허공에 맴돌던 산들바람
창문을 넘나드니
아 가을인가
청명한 하늘을 향해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에
가을빛이 묻어왔는가.
들판 가득 흘러넘치는
구수한 가을 향기는
가을 문턱을 녹여 내리고
푸른 달빛이 쏟아지는 밤이면
잠 못 이루는 귀뚜라미 소리에
옛 추억의 그림자들이
깊은 상념의 늪으로 빠져드니
정녕 가을인가.
세월의 수레바퀴에 짓눌려
또 한 해의 여름이 가네.

가을은 당신 만나는 설레임이다 / 김철현 시인
내게 가을은
쉽게 잊을 수 없는 첫사랑이다.
가슴 설레는
꽃향기가 있고
그리움에 방황케 하는 바람이 있다.
꽃처럼 너를 만났고
바람처럼 살아온 기억들로
하루를 채우노라면
어느새 나는 가을 들판의 주인처럼
배불렀던 사랑을 갈무리하며 서 있다.
내게 가을은
익숙한 가사를 흥얼거리는 노래이다.
너 떠난 빈자리에
아직도 남아 있는 향기며
바람 같은 그리움이 숨 쉬고 있다.
꽃 지듯 사랑도 가고
바람에 날리듯 흩어진 기억이지만
당신만은 잊히지 않고 남아 있기에
내게 가을은
여전히 당신 만나는 첫사랑의 설렘이다.

가을의 침묵 / 이남일 시인
인생은 가을볕처럼
잠깐 쬐다 가는 것
우리 서로
묻지 않으면 침묵하자
만남은 짧게
대화도 길지 않게
슬픔 따윈 우리
가슴 깊이 묻어 두기로 하자

가을의 향기 / 김현승 시인
남쪽에선
과수원에 임금(林檎)이 익는 냄새
서쪽에선 노을이 타는 내음......
산 위엔 마른풀의 향기
들가엔 장미들이 시드는 향기......
당신에게 떠나는 향기
내게는 눈물과 같은 술의 향기
모든 육체는 가고 말아도,
풍성한 향기의 이름으로 남는
상하고 아름다운 것들이여,
높고 깊은 하늘과 같은 것들이여......
가을은 깊은데 / 임대식 시인
단풍잎 스산히 떨어지는 날엔
어쩐지 그대가 보고 싶다
어디에선가 나를 부르며
달려올 것만 같아서
이 마음 하염없이 설레인다
기다리는데 주책도 없는
이 마음 대책 없이 기다리는데
그니는 이런 마음 알기나 할까
부질없는 기다리는 맘
아신다면 어서 빨리 오시옵소서
바람에 낙엽지고
가을은 어느덧
저만큼 깊은데

가을 단상 / 정태중 시인
노오란 은행잎이 손짓하며 부를 제
타는 듯 마음자락 홍엽에 올려노메
이 한 몸 어디에 올라 애달다 하오리오
낙락장송 곧은 마음 변함이 없는데
불어오는 소슬바람 애간장 태우고
해거름 바람난 입술 대지에 스며드니
세월은 기약 없이 석양을 짊어지고
어둠 속 그림자는 서산에 묻히노니
새벽녘 이슬을 품은 낙엽을 어이하리

가을은 짧아서 / 박노해 시인
가을을 짧아서
할 일이 많아서
해는 줄어들고
별은 길어져서
인생의 가을은
시간이 귀해서
아 내게 시간이 더 있다면
너에게 더 짧은 편지를 썼을 텐데
저 적게 말하고
더 깊이 만날 수 있을 텐데
더 적게 가지고
더 많이 살아갈 수 있을텐데
가을은 짧아서
인생은 짧아서
귀한 건 시간이어서
짧은 가을 생을 길게 살기로 해서
물들어가는
가을 나무들처럼
더 많이 비워내고
더 깊이 성숙하고
내 인생의 결정적인 단 하나를 품고
영원의 시간을 걸어가는
짧은 가을날의
긴 마음 하나

가을, 그대였나요 / 이영균 시인
꾸미지 않아도 계절의 전령사인 것처럼
빛깔, 고추잠자리처럼 빨갛고
느낌, 코스모스처럼 가냘프고
촉감, 들국화처럼 청순한
사랑스러운 그 누구의 연인
정녕 내 사랑은 아닌지
하늘이 아득히 푸르고
금빛 햇볕 따갑게 내리고
찬바람에 그리움 한없이 더해 가는
그런 계절에 떠오르는 이름
노을이 물들어 오는 카페에서
붉은 강물 한 잔
여유로운 그 계절의
참 의미로 느껴져 오는
아- 가을

가을 길 / 이원문 시인
걷는 길 하늘 높이 옛 하늘 같고
돌아보면 온 길보다 인생 길이 더 길다
굽이굽이 걸어온 언덕 많은 비탈길
이 길은 한 굽이에 돌부리도 없건만
지나온 그 길은 왜 그리 돌부리가 많았던지
멈춰서 보는 하늘 그 비탈길 얹어지고
옛 생각에 마음 울컥 그날이 떠 오른다
이런 일 저런 일 미움에 오해 많았던 일
다 잊고 버려도 차였던 돌부리는 안 뽑히는 것인지
이 가을 낙엽 주워 벌레의 흔적 메운다

가을에게 전하는 말 / 미나 시인
그리움에 젖은 마음들
나뭇가지에 걸려있다
나뭇잎은 떨어져도
그리움은 더욱 익어만 가는
시월은 낭만적이다
푸르고 높던 하늘
차츰 내려오고
꽃잎들 단풍잎들 떨어지는
시월은 미련이기도 하다
시월의 가을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만
아름답게 보인다
그래서
시월에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걷고 싶다
시월의 가을은
미련과 낭만과 사랑이
마음을 흔드는
사랑에 빠지고 싶은 계절이다
가을이 오면 밀려오는 향수(鄕愁) / 박만엽 시인
하늘에 날아가는
잠자리만 보아도
눈물이
샘물처럼 고여옵니다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 있고
만질 수 없었던 것을
만질 수 있고
가질 수 없었던 것을
이제야 소유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새벽이 언제 오나
뒤척이며 베개에 적시던
눈물은 이제 흘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또 다른 이별이
기다리고 있다 해도
당신은 나에게
모든 것을 주셨고
나 역시 당신에게
모든 걸 드렸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만 보아도
가슴에 그리움이 밀려옵니다.
당신의 눈을 통해
지금의 나를 볼 수 있고
당신의 가슴을 통해
심장의 박동소리를 들으며
당신과 함께 영원히
꿈을 키워갈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가을은 저녁노을 속으로 온다 / 나상국 시인
뙤약볕 분주하게 오가던
나뭇가지 위
한결 가벼워진
층층 치마 나푼나푼
한가로이 노니는 소슬바람
서산마루 긴 하루의 끝자락을 잡고
흔들거리며 살랑살랑 그네를 타는
한 줌의 저녁노을
어느 외딴집 굴뚝 위로
하얀 저녁연기
몽울몽울 피어오르는
초가지붕 위
만삭의 보름달처럼 걸린
둥근 박 세 덩이
급하게 어둠이 찾아들면
채 피워내지 못한 하얀 박꽃
귀뚜라미 전율 속에
몸을 낮게 엎드려
철 지난 세월을 그리워하네
가을 길섶에서 / 오애숙 시인
바람 소리 낙엽 소리
귓전에 울리는
가을의 문턱이다
계절이 지나가는
팔월의 끝자락
휴식하고픈 맘이나
바람 따라 낙엽 따라
나이를 더 먹기 전에
물결치며 흐르고 싶네
길 험하고 협착해도
행복 주는 사람처럼
가을빛 영근 사랑으로
가을어법 / 나태주 시인
가을은 우리에게
경어를 권장한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잘 견디셨습니다
먼 길 오느라 힘드셨겠어요
짐까지 무겁게 들고 오셨군요
가을은 우리에게
안쓰러운 마음을 허락한다
그래, 그래, 애썼구나
잘 참아줘서 고마웠단다
이제 좀 쉬어라
쉬어야 다시 또 떠날 수 있지
가을의 햇빛과 바람은
우리에게 용서를 가르치고
화해를 요구한다
낙엽들도 그렇게 한다
만추 / 안광수 시인
따사로운 햇볕 사이로
익어가는 너의 사랑처럼
붉게 물든 입술
시간과 계절의 조화로
새롭게 탄생하는 성숙한
그대를 바라봅니다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그대 사랑 익어가는
이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붉은 태양처럼 출렁이는 마음을
가슴에 품고 완성된 작품을
종이배에 띄워 보내고 싶습니다
가을 속으로 / 청산 홍대복 시인
가을바람
솔솔 불어
뭉게구름 흘러가고
꽃잎에 맺힌 이슬
유리같이 반짝인다
들꽃향기 흩어지는
황톳길 따라
소달구지 덜컹덜컹
푸른 하는 마시며
가을을 싣고 간다
가을 들녘
황금벌판 만추의 설렘
수채화라 그려진
가을 속으로
하루해는 서산 넘어
선홍빛에 물들어 간다
붉게 점점 더 가을 속으로
가을 은행나무 / 정진명 시인
삶은 가끔 쉬어 가는 거라며
둥근 그늘을 떨구던
은행나무.
여름내 부풀어 올랐던 청춘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추락하는 삶도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다고
크고 노란 마침표를 찍는다.
점점이 찍어간 그 점,
내 마음속에도 하나 찍혀
말없음표 끝난 자리에서 둥근달이 뜬다.
가을에는 / 강인호 시인
물소리 맑아지는 가을에는
달빛이 깊어지는 가을에는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에는
쑥부쟁이 꽃피는 가을에는
어인 일인지 부끄러워진다
딱히 죄지은 것도 없는데
아무런 이유 없이 가을에게
자꾸만 내가 부끄러워진다
가을이면 / 문재학 시인
추억에 젖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행복에 취해
꿈의 꽃길을 걷던 때가
그 언제였든가
스산한 바람이 불면
낙엽처럼 물들어
가슴으로 살아나는 그리움
달랠 길 없어라.
사랑이 태우고 간
미련의 불씨는
참을 수없는 한숨 속에 녹아
세월의 강으로 끝없이 흘러가네.
들국화 향기 속으로
다시 못 올 길을 떠나 간
내 사랑 임이시여 아시는가.
쓸쓸한 가을이면
따뜻한 온기 그 체취 못 잊어
슬픔의 늪에 빠지는 이 마음을
가을이라는 말에 / 이채 시인
가을이라는 말에
우수수 떨어지는 잎
가슴으로 낙엽이 쌓여 가네
가을이라는 말에
문득 흔들리는 나뭇가지
바람에 가을도 흔들리네
가을이라는 말에
가슴이 내려앉네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가을이라는 말에
하늘도 기울어
별들이 하얗게 쏟아지네
어느 가을날 오후 / 이순복 시인
내려앉을 듯한 잿빛 하늘에
먹구름이 엉덩이를 걸치고 있는
가을날 오후
추적추적 내리는 가랑비에
달랑거리던 나무 잎사귀는
젖은 몸 되어 떨어진다
스치는 소슬바람은
아득한 첫사랑의 입맞춤처럼
감미로웁고
들꽃을 닮은 여인은
젖은 머릿결에 묻어온 가을 향기로
잊혀진 그리움만 되살리고 있다
가을밤 / 변종윤 시인
낙엽이 떨어진다.
벤치에도
내 옷자락에도
모두가 떠난 자리엔
가을 편지 한 장 남겨 놓고
스산한 바람만
가슴을 쓸어내린다.
야윈 몸뚱이가 떨고 있는
피붙이가
더욱더 가을을
아프게 한다.
달빛 가린 마지막
잎사귀가 울고 있다.
외로움을 태우는 밤안개
온몸을 휘감고
체온을 느끼려 몸부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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