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랑에 관한 시 모음을 포스팅합니다.
사랑의 물리학 / 시인 김인육
질량의 크기는 부피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킁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먼 후일 / 시인 김소월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쑥부쟁이 연가 / 시인 복효근
그 가시내와 내가
그림자 서너 배쯤 거리를 두고
하굣길 가다보면
마을 어귀
쑥부쟁이 너울로 핀 산그늘에
가시내는 책보를 풀어놓고 아예
가을 다 가도록
꽃이 몇 송인지 한참이나 꺾다간
뒤도 안 돌아보고 가곤 했었지
저만치 뒤에 쪼그리고 앉아
가시내 스치는 손끝에 내 마음도 피어서
꺾이는 저 쑥부쟁이 꽃빛깔
꽃빛깔로 달아오르곤 했었지
세월도 그 가시내
무심한 눈길 몇 번 마냥 흘러서
마을 어귀 지날 때
시방은 누가 거기 홀로 피어 울고 있는지
쑥부쟁이,
쑥부쟁이 너울로 핀
산 그늘에
[출처] "누운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달아실출판사, 2017)

달맞이꽃 / 시인 이홍섭
한 아이가 돌을 던져놓고
돌이 채 강에 닿기도 전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던
돌 같던 첫사랑도 저러했으리
그로부터 너무 멀리 왔거나
그로부터 너무 멀리 가지 못했다

다시 첫사랑에 관하여 / 시인 심재휘
절정에 올라 막 쏟아지려는 파도는
아직도 그대로입니다
저 멀리 눈 먼 등대
앞에서 나는 머리카락 흩날리며
내 앞의 당신을 오늘도
바라보고 있습니다
궁금한 것은
이 굳은 방에 나를 가두어놓고
그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나요?
지금도 한 눈을 감은 채
나를 찍고 있나요?

사랑 / 시인 한용운
봄물보다 깊으니라
갈산보다 높으니라
달보다 빛나리라
돌보다 굳으리라
사랑을 묻는 이 있거든
이대로만 말하리

내 마음을 아실 이 / 시인 김영랑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데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절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드리지.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맑은 옥돌에 불이 달어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

첫사랑 / 시인 안도현
그 여름 내내 장마가 다 끝나도록 나는
봉숭아 잎사귀 뒤에 붙어 있던
한 마리 무당벌레였습니다
비 그친 뒤에, 꼭
한 번 날아가보려고 바둥댔지만
그때는 뜰 안 가득 성큼
가을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코 밑에는 듬성듬성 수염이 돋기 시작하였습니다

첫사랑 / 시인 이정록
헤어진 지
열흘이 됐다.
나는,
약물 과다 복용으로 죽을 것이다.
세월이
약이라면.

사랑의 고백 / 시인 김소월
사랑은 단지 고백하는 일이다.
고백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말로 표현하는 일이다.
사랑은 그 사람을 생각하는 일이다.
그 사람을 떠올리며 하루를 살아가는 일이다.
사랑은 고백할 때만큼
진지하고 떨리는 순간이 없다.

사랑하는 까닭 / 시인 한용운
나는 왜 사랑하는가
내 마음속에 숨은 그대는
나의 모든 것처럼 뜨겁고 아름답다
그대 없이 살아갈 수 없으니
나는 그대를 사랑하는 것이다.
나의 심장은 그대의 얼굴을 그리며
나의 손은 그대를 닮아가고
나의 눈은 그대의 눈을 기다린다
나는 그대 없이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
그대는 내 삶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까닭은
그대가 나의 삶이기 때문이며
그대가 나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 시인 나태주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대하여는
말하지 않겠다
아니, 말할 수 없다
다만
네가
하루하루
잘 지내기를 바랄 뿐이다

첫사랑 / 시인 정세훈
녀석이 나보다
부잣집 아들이었다는 것도
학업을 많이 쌓았다는 것도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도
그 어느 것 하나 부럽지 않았다
다만, 녀석이
내 끝내 좋아한다는 그말 한마디
전해지 못했던 그녀와
한 쌍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적
난 그만
녀석이 참으로 부러워
섧게 울어버렸다

첫사랑 / 시인 서봉교
깊은 겨울
소죽 끓이는 아궁이 앞에서
단지 속 꽁꽁 언 홍시의 얇은 껍질을
그 뜨거운 불김에
서서히 녹이면서
하나씩
벗겨 먹는 맛
그 맛.

못 잊어 / 시인 김소월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끝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사랑스러운 사람 / 시인 윤동주
사랑스러운 사람을 생각한다.
그는 아름답고, 그의 웃음은
햇살처럼 따사롭고, 부드럽다.
내 마음속에서 그리움은 자라나,
하루하루 그를 더 사랑하게 된다.
그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은
별이 쏟아지는 밤처럼 소중하고,
그를 위한 사랑은 끝없이 깊어진다.
사랑은 그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그 어떤 것도 몰랐던 나를 깨닫게 한다.

첫사랑 / 시인 문병란
눈썹달이
나뭇가지 끝에서
작은 새가 되어 날아간다
어제 핀 꽃이
오늘 핀 꽃에게
부드러운 혀 끝을 오므린다
산다화 냄새가
쎄하니
코 끝에 와서 간지린다
안 돼요 안 돼요
바람이
보리밭 속으로 숨는다
숨겨 놓은
오렌지를 훔치는
아도니스의 하얀 손
어둠은 살랑
눈썹달 끝에서
미약을 흘린다.

사랑 / 시인 고은
사랑은 손길이 닿을 듯,
자주 다가갈 수 없는 거리에서
너를 바라보며 느끼는
그리움의 깊이가 사랑이다.
너의 웃음, 너의 침묵
너의 작은 행동까지도
내게는 세상의 가장 큰 의미로
다가온다.

사랑이란 / 시인 허수경
사랑이란
그 사람을 위해
가장 작은 것까지도
마음으로 챙겨주는 일이다.
사랑이란
서로의 침묵 속에서
불안해하지 않고
편안함을 느끼는 일이다.
사랑이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눈물이 나고, 웃음이 나도
그냥 함께 하는 것,
그 자체로 충분한 것이다.

사랑의 의미 / 시인 정호승
사랑이란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 닿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사랑이란
서로에게 끌려가다가
언젠가는 떨어질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다시 사랑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끝없는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 시인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로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필자의 생각]
기다림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잘 표현하였으며, 시를 쓴 1980년대 독재정권 당시의 사회상에 비추어 보면 자유와 평화를 갈망하는 마음도 표현한 것 같다.

나 - 시인 김용택
나는
네가 좋아
그냥 좋아
네가 있어서 좋고
네가 거기 있어서 더 좋고
네가 내 마음속에 있어 정말 좋고
그냥 좋아
그냥 그렇게
나는 네가 좋아

첫사랑 / 시인 김용택
바다에서 막 건져올린
해 같은 처녀의 얼굴도
새봄에 피어나는 산중의 진달래꽃도
설날 입은 새 옷도
아, 꿈같던 그때
이 세상 전부 같던 사랑도
다 낡아간다네
나무가 하늘을 향해 커가는 것처럼
새로 피는 깊은 산중의 진달래처럼
아, 그렇게 놀라운 세상이
내게 새로 열렸으면
그러나
자주 찾지 않은
시골의 낡은 찻집처럼
사랑은 낡아가고 시들어만 가네
이보게, 잊지는 말게나
산중의 진달래꽃은
해마다 새로 핀다네
거기 가보게나
삶에 지친 다리를 이끌고
그 꽃을 보러 깊은 산중 거기 가보게나
놀랄걸세
첫사랑 그 여자 옷 빛깔 같은
그 꽃빛에 놀랄걸세
그렇다네
인생은 , 사랑은 시든 게 아니라네
다만 우린 놀라움을 잊었네
우린 사랑을 잃었을 뿐이네

첫사랑 / 시인 고재종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
싸그락 싸그락 두드려보았겠지
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
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준 다음에야
마침내 피워낸 저 황홀 보아라
봄이면 가지는 그 한 번 덴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뜨린다

눈 오는 날 / 시인 안도현
너를 처음 생각한 날도
눈이 왔다
너를 기다리던 날에도
눈이 왔다
너를 사랑하게 된 날에도
눈이 왔다
너를 보내던 날에도
눈이 왔다

별이 되고 싶다 / 시인 안재동
별이 되고 싶다
살아서 별이 되고 싶다
언제나 너의 눈에 잘 띄는
밝고 아름다운 별이 되고 싶다
별이 되고 싶다
죽어서도 별이 되고 싶다
언제나 너의 모습 지켜주는
크고 영롱한 별이 되고 싶다
나는 그런 너의 별이 되고
너도 그런 나의 별이 된다면
너와 나의 아름다운 사랑이
별처럼 빛이 날 수 있다면
별이 되고 싶다
밤하늘의 별이 되고 싶다
너에게서 가장 가까운 곳에
푸른 하늘의 별이 되고 싶다

첫사랑 / 시인 손세실리아
첫사랑은 순금과도 같아서
숱한 세월에도 퇴색되는 법 없고
곤궁할수록 진가를 더한다
세상 어떤 마음이 이토록
소슬바람 한 자락에도
놀라 파르르 떠는
아기 새의 가슴 같을까
수천수만의 문장을 짓고도
끝끝내 열리지 않는 말문 같을까
긴 밤 뒤척임
응답 없는 화살기도
누구도 피해갈 수 없고
누구에게나 영구한
오직 한 사람을 향한
죄 없는 맹목

첫사랑 / 시인 류근
그대를 처음 보았을 때
내 삶은 방금 첫 꽃송이를 터뜨린
목련나무 같은 것이었다
아무렇게나 벗어놓아도 음악이 되는
황금의 시냇물 같은 것이었다.
푸른 나비처럼 겁먹고
은사시나무 잎사귀 사이에 눈을 파묻었을 때
내 안에 이미 당도해 있는
새벽안개 같은 음성을
나는 들었다
그 안갯속으로
섬세한 악기처럼 떨며
내 삶의 비늘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곧 날이 저물었다
처음 세상에 온 별 하나가
그날 밤 가득 내 눈썹 한끝에
어린 꽃나무들을 데려다주었다
날마다 그 꽃나무들 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시인 김소월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첫사랑 / 시인 류시화
이마에 난 흉터를 묻자 넌
지붕에 올라갔다가
별에 부딪친 상처라고 했다
어떤 날은 내가 사다리를 타고
그 별로 올라가곤 했다
내가 시인의 사고방식으로 사랑을 한다고
넌 불평을 했다
희망이 없는 날을 견디기 위해서라고
난 다만 말하고 싶었다
어떤 날은 그리움이 너무 커서
신문처럼 접을 수도 없었다
누가 그걸 옛 수첩에다 적어 놓은 걸까
그 지붕 위의
별들처럼
어떤 것이 그리울수록 그리운 만큼
거리를 갖고 그냥 바라봐야 한다는 걸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시인 류시화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시인 류시화 소개]
1958년 옥천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생활"이란 시로 데뷔했다. 시집으로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외눈박이 물고기 사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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