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름에 관한 시를 포스팅합니다.
여름이 왔다 / 정영학 시인
계절의 이동은
얼음장처럼 냉정하다
간다 온다 말도 없이
슬며시 바톤을 주고받는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왕 오는 여름을 반겨 맞자
오지 말래도 오는 여름이니까
녹음과 푸르름의 향연을 즐기자
폭염 가뭄 장마 태풍
기습폭우 이런 건 생각하지 말자
푸른 하늘에 구름의 묘기를 즐기자
뭉게 양떼 새털 비늘 송이 안개 ...
나무는 녹색 옷을
두껍게 입어도
나는 훨훨 벗어던지고
여름의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

여름 노래 / 이해인 수녀
엄마의 무릎을 베고
스르르 잠이 드는
여름 한낮
온 세상이
내 것인 양
행복합니다
꿈에서도
엄마와 둘이서
바닷가를 거닐고
조가비를 줍다가
문들 잠이 깨니
엄마의 무릎은 아직도
넓고 푸른 바다입니다

익어가는 여름 / 은파 오애숙 시인
아카시아 내음
향그러움 휘날리는
오월의 길섶 지나
유월의 갈맷빛
푸름의 향연 속에
맴맴맴맴 매~에앰
매미의 합창 소리
따가운 햇살에
옷 벗어 던지운 채
물장구 치는 동네 꼬마
해맑은 웃음소리
여름이 뙤약볕 속
수채화로 농촌의 풍경
스케치 하고 있다

여름밤 / 정호승 시인
들깻잎에 초승달 싸서
어머님께 드린다
어머니는 맛있다고
자꾸 잡수신다
내일 밤엔
상추잎에 별을 싸서 드려야지

당신의 여름을 사랑합니다 / 이채 시인
겨울을 덥지 않아서 좋고
여름은 춥지 않아서 좋다는
넉넉한 당신의 마음은
뿌리 깊은 느티나무를 닮았습니다
더위를 이기는 열매처럼
추위를 이기는 꽃씨처럼
꿋꿋한 당신의 모습은
곧고 정직한 소나무를 닮았습니다
그런 당신의 그늘이 편해서
나는 지친 날개 펴고
당신 곁에 머물고 싶은
가슴이 작은 한 마리 여름새랍니다
종일 당신의 나뭇가지에 앉아
기쁨의 목소리로
행복의 노래를 부르게 하는
당신은 어느 하늘의 천사인가요
나뭇잎 사이로 파아란 열매가
여름 햇살에 익어가고 있을 때
이 계절의 무더위도 신의 축복이라며
감사히 견디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여름의 길목 / 염인덕 시인
초록이 우거지는 숲
그늘을 펼치고
눈부신 색깔로
세상을 비추는 푸르름
높은 구두 신고
걸어온 인생길에
아픔도 기쁨도 함께하며
웃으면서 살아온 세월
사랑의 끈 붙잡고 온 길 날마다
등불을 밝혀놓고 희망의
꽃을 피워 가는 우리네
지천이 초록의 계절
내 작은 가슴에도
푸른 향기 가득 심어 본다

여름일기 / 이해인 수녀
사람이 나이들면
고운 마음 어진 웃음 잃기 쉬운데
느티나무여
당신은 나이가 들어도 어찌그리
푸른 기품을 잃지 않고
넉넉하게 아름다운지
나는 너무 부러워서 당신 그늘 아래
오래 오래 앉아서 당신의
향기를 맡습니다
조금이라도 당신을 닮고 싶어
시원한 그늘 떠날 줄을 모릅니다
당신처럼 뿌리가
깊어 더 빛나는
시의 잎사귀를 달수 있도록
나를 기다려 주십시오
당신처럼 뿌리 깊고 넓은
사람을 나도 하고 싶습니다

한여름 저녁의 시 / 정연복 시인
초록 이파리들도
맥을 못 추게 했던
한낮의 불볕더위
뒤꽁무니를 빼고 있다.
온종일 땀에 절었던
뺨에 팔뚝에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
참 시원하다.
여름도 한철 밉살스런
찜통더위도 한때
저만치서 자박자박
가을의 발자국 소리 들린다

여름밤에 / 송정숙 시인
모두 잠든 밤
가로등 불빛
스쳐 간 걸음 헤아리는
겸손함으로 아름답게 빛나고
어떤 이의 푸른 고독
다정해지고 싶어 한다
가난은 잔기침으로
눈물이 많아지고
희망을 따라가며
용기를 찾아가는 길가에
깊어 가는 여름밤이
꿈을 꾸고 있다
홀로 견디는 밤에
생각이 찾아와서
놀이터 만들어 놀자 하니
그래 놀아 보자
이밤에 다 가도록
쾡거리 장단 맞추어......

도둑이 든 여름 / 서덕준 시인
나의 여름이 모든 색을 잃고
흑백이 되어도 좋습니다
내가 세상의 들꽃과 들풀,
숲의 색을 모두 훔쳐올 테니
전부 그대의 것 하십시오
그러니 그대는 나의 여름이 되세요

여름에게 / 정연복 시인
여름아
무더운 여름아
긴긴 겨울 내내
보고 싶었던 널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니?
겨울의 터널 지나
봄의 언덕도 넘어
애써 먼 길 돌아
여기까지 찾아온 널
반갑게
맞아주어야지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온몸에서 펄펄
열이 날까
여름아 여름아
아프지 마

쓸쓸한 여름 / 나태주 시인
챙이 넓은 여름 모자 하나
사 주고 싶었는데
그것도 빛깔이 새하얀 걸로 하나
사 주고 싶었는데
올해도 오동꽃은 피었다 지고
개구리 울음 소리 땅 속으로 다 자즈러들고
그대 만나지도 못한 채
또다시 여름은 와서
나만 혼자 집을 지키고 있소
집을 지키며 앓고 있소.

여름 청산에 가면 / 김덕성 시인
지금 대지에는
작열하는 불볕더위로 타들어가는
이글이글 끓는 대지의 열기로
점점 알차게 익어가는 계절
초록빛 청산(靑山)에 가면
계곡을 흘러내리는 시원한 물소리
산새 노래 들리는 어머니 품안
늘 푸르고 포근한 곳
수목사이로 내리는 빗줄기
신(神)의 호흡소리인 듯 들리는 청산
고요가 흐르는 자연의 세상에는
정화된 맑은 공기 흐르고
심신을 맑게 활력을 주고
짙푸른 녹음 속에서 맑아지는 영혼
청산에서 신기하게 호흡 한 번에
아픔도 고뇌도 사라지고

여름 숲 / 박상희 시인
넉넉한 거친 바람 숨겨
초록의 향으로 돌려 주렴.
따가운 햇살
몰래 숨어 쉬어 가도
모른 체 덮어 주렴.
지친 나그네 덥석 주저앉아
세월 보따리 풀어 놓거든
초록의 다독다독 감싸 주렴.

여름 숲에 들다 / 주로진 시인
숲속에 드니 파랗게 물이 든다
장마는 그쳤다
긴 장마 끝 햇살 눈부신 날
골짜기 그늘 이끼 푸르고
개울은 철철 몸이 불었다
울창한 계곡 나뭇가지 끝
날개옷 한 벌 대롱대롱 걸려 있다
비 그친 숲 요란한 매미 울음
어디선가 씨 여무는 소리
귓불을 간질이던 바람
출렁출렁 다래넝쿨 타고 있다
왁자한 개울에 매미 울음 떠내려간다.

여름 들녘 / 이원문 시인
약속의 여름 들녘
저 들녘이 가을이면
메뚜기의 들녘이 되겠지
새털구름 높아라 참새의 들녘이고
아직은 파란 들녘
길고 짧은 매미의 울음
문간의 언니들 무엇하고 있는지
보릿짚 다듬어 서로 대어 보는 언니들
꿈 모아질 여치 집
우리 언니의 꿈이 담길까
삐뚤게 엮어 가는 언니들의 솜씨
늘어진 매미의 울음을 넘어 들어온다

비 갠 여름 아침 / 김광석 시인
비가 갠 날,
맑은 하늘이
못 속에 내려와서
여름 아침을 이루었으니,
녹음의 종이가 되어
금붕어가 시를 쓴다.

여름으로의 초대 / 조재선 시인
꽃비가 내리던 날
노을 지는 언덕에 올라
등을 들고 다소곳
기다리는 그대
찔레꽃 피는 울타리마다
간간이 미소짓는 줄장미
짙은 녹음 그늘 드리워
넉넉한 품으로
어서 오라 손짓하는 플라타너스
향기로운 계절에
온 천지가 기쁨의 등을 켜니
마음속 피어 있는 그리운 이여
이 계절이 다 가기 전 어서 오라
산새들 반기며 노래하는
언덕으로 어서 오라

바다로 간 여름 / 정기현 시인
넘실대는 파도가
낭만의 밤을 유혹하는
바다로 간 여름이
비지땀으로 후줄근하다
발가벗은 민낯이 뿜어내는 열풍에
해변은 도가니처럼 달아오르고
하얀 모래밭은
뜨거운 몸살로 아우성친다
길게 누운 해안선 껴안고
철석이는 손길로 굴곡진 허리를
물거품처럼 넘나드는 파도에
해변은 달뜬 신음을 지르고
바닷바람 출렁이는
화려한 네온 조명 사이로
조개껍데기 같은 사연이 팔짱을 끼고
삼삼오오 속삭이는 여름은
잠들 줄 모른다
밤사이 나뒹군 사랑의 흔적이
빈 껍질로 묻히고
짧은 생의 애환에 목이 멘
매미들 생떼에 마냥 해바라기 속이
까맣게 타는 여름이다

여름 꽃 / 정연복 시인
불볕더위와 찜통더위
가마솥더위 넘어
온 땅이 펄펄 끓는
용광로 더위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여름 꽃들.
나팔꽃 도라지꽃
능소화 무궁화
호박꽃 쑥부쟁이
패랭이꽃 맨드라미
무더위에 아랑곳없이
제 삶의 길을 간다.

여름 석별 / 오보영 시인
할 바를 다했다
여름으로서
마땅히 하여야 할
도리
필히 감당해야 할
소명
내리쬐는 햇살로
시원한 소나기로
숲의 푸르름 위해
초목 번성을 위해
그간
님 주신 지혜
주어진 능력 안에서
할 만큼은 했단다
이제는
기꺼이
다가온 가을에게
그 자리 넘겨주고
님 마련해 준
새 소명 찾아
겸허한 마음으로
자리 비운다

여름의 흔적 / 이원문 시인
여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니고
어중간한 이 계절
가을이라 말 할까
한낮 뜨거움으로
여름이라 말 할까
달력의 날짜로
분명 가을인데
여름 같은 이 가을
언제 더 깊어 갈까
뜨거웠던 그 자리
찬 바람이 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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