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바다 시 모음을 포스팅합니다.
태평양에서 / 박인환 시인
갈매기와 하나의 물체
고독
연월도 없고 태양도 차갑다
나는 아무 욕망도 갖지 않겠다
더욱이 낭만과 정서는
저기 부서지는 거품 속에 있어라
죽어간 자의 표정처럼
무겁고 침울한 파도 그것이 노할 때
나는 살아있는 자라고 외칠 수 없었다.
그저 의지의 믿음만을 위하여
심유한 바다 위를 흘러가는 것이다
태평양에 안개가 끼고 비가 내릴 때
검은 날개에 검은 입술을 가진
갈매기들이 나의 가까운 시야에서 나를 조롱한다
환상
나는 남아 있는 것과
잃어버린 것과의 비례를 모른다
옛날 불안을 이야기했을 때
이 바다에선 포함이 가라앉고
수십만의 인간이 죽었다
어둠침침한 조용한 바다에서 모든 것은 잠이 들었다
그렇다 나는 지금 무엇을 의식하고 있는가?
바람이 분다
마음대로 불어라. 나는 데키에 매달려
기념이라고 담배를 피운다
무한한 고독 저 연기는 어디로 가나
밤이면 무한한 하늘과 물과 그 사이에
나를 잠들게 하라

바다의 꿈 / 오승환 시인
하늘로 가고픈 꿈
연기처럼 피어난다
파도에 부서져도
갈 수 없던 꿈
햇빛이 그린
무지개다리 건너가네
하늘 높은 바다의 꿈
무지개 저편의 해무여

상처난 바다 / 강남주 시인
아침 바다는
언제나 안개 속에서 눈뜬다
간밤에 난행,
그 무수한 난행에
마른기침 삼키며
피곤을 일으킨다.
누가 아나요?
이내 마음을.
깊은 생채기,
끝없이 깊은 곳의
캄캄한 아픔을 .
겹겹으로
천근 만근으로
짓누르는 안개에
허우적거리는 사지(四肢)
바다는 언제나
찢어진 옷매무새로
안개 속을 눈뜬다.

바다 / 김해자 시인
넓어서인지만 알았습니다
깊어서인지만 알았습니다
억 겁 세월 늙지 않아 늘 푸른 당신
제 몸 부딪쳐 퍼렇게 멍든 줄이야
제 몸 부딪쳐 하얗게 빛나는 줄이야
흘러오는 건 모두 받아들이는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멍듭니다
미워하지 마라, 다 받아들여라
생채기는 늘 나로부터 생긴다는 듯
생채기 없인 늘 푸를 수 없다는 듯
흐르고 흘러 더 낮아질 것 없는
당신은 오늘도 하얗게 피 흘립니다.
스스로 나누고 잘게 부수면
아무도 가를 수 없다는 듯
거대한 하나가 된다는 듯

바다와 시 / 홍해리 시인
난바다 칠흑의 수평선은
차라리 절벽이어서
바다는 대승(大乘)의 시를 읊는데
나는 소승(小乘)일 수밖에야
죽어 본 적 있느냐는 듯 바다는
눈물 없는 이 아름다우랴고
슬픔 없는 이 그리워지랴고
얼굴을 물거울에 비춰보라 하네.
제 가슴속 맺힌 한
모두어 품고 아무 일도 없는 양
말 없는 말 파도로 지껄일 때
탐방탐방 걸어나오는 수평선
밤새껏 물 위에 타던 집어등
하나 둘 해를 안고 오는 어선들
소외도 궁핍도 화엄으로 피우는
눈 없는 시를 안고 귀항하고 있네

바다가 보고 싶은 날 / 초아 민미경 시인
가끔 일상 속에서
푸르른 세상
가슴과 가슴이 맞닿는 곳
떠나고 싶은 날 있습니다
청아한 미소 가득한 여행
넋을 잃은 마음의 파도
아리도록 다가오며
놓치며 지나간 자리
파란 웃음꽃 피어오를 때
어여쁜 눈물이 나네요
꿈결같은 노랫소리
투명한 고요 속
갇히고 싶은 날
바다가 보고 싶은 날입니다.

빈 바다 / 한승필 시인
사랑의 이름으로 파도를 타는
옛여인의 풀잎같은 빈 바다
침묵으로 주저앉은 너의 시린 가슴
환생의 기적은 열리는가
나는 밤바다를 쓰러안는다
황혼에 물들어 오늘이 가도
어제처럼 남아야 할 나의 슬픈
빈 벤치
하얀 백사장에 그림자만 보내고
엽서처럼 날아들던 작은 물새들
벼랑가에 지친날개 접는 밤
가슴으로 울어 울어 목이 메인 날에는
기도하라, 고개 숙여 꿈접으면
내일의 파도 출렁이는 바다가
더운 가슴에 파고 들리라

바다 / 정태중 시인
칠흑의
밤 파도 부서질 때
해송사이 바람은
끈적임으로 속삭인다
별빛에 띄우는 사연
그리움의 연서 여서
애달은 달빛 고운 물
포구에 안길 때
갯벌에 하얀 갈매기
물빛에 반짝이고
연인의 속삭임
바람에 날려 오는 듯
하늘같이
땅이어서 좋은
너를
홀연히 바라본다

달의 바다 / 정유찬 시인
바다의 표면이 유리처럼 맑은 밤
달이 미끄러지며 항해를 한다
홀연히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달이 조각조각 부서졌다 싶은데
어느새 저 멀리 둥글게 떠있다
항구에 달빛이 비춘다
달이 모래 위를 스치고 바위를 쓰다듬는다
슬픔이 종말을 고하고 새벽이 오고
붉은 태양이 탄성을 지르며 깨어나기 전까지
노래하는 인어의 머릿결은 달빛에 반짝이며
황금색 물안개가 뭉실뭉실 피어날 테니
알 같은 달을 수시로 품는 바다는
밤마다 무수한 별을 낳으리라

바다 / 이은주 시인
한파에도 결빙되지 않는 바다
한가운데 떨고 있는 부표에
무력감으로 시린 마음을 묶어본다
마음은 마음으로 끌고 마음으로 잡는 것
힘든 시기를 견디고 있는 흔들리는 부표
시기에 맞는 일을 해야 시기를 자기 것으로 만들 텐데
지나간 썰물에 마음 두지 않고
오고 있는 밀물에 흔들리지 않고
덮쳐오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지금 가능한 만큼만
지금 물결이 닿아있는 곳에만 마음을 두고
때를 기다리자
욱신거리는 머릿속으로
상념이 갯강구처럼 분주할 뿐
글은 한 줄도 써지지 않지만
오롯이 지금을 산다는 것
부표처럼 흔들리는 마음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지금을 산다는 것
이미 끝난 발길을 되돌리지 않고
끝을 향해서 서두르지 않고
부표 경계만큼의 바다까지만 살아보는 것

바다처럼 / 이정연 시인
가슴속 깊이
뭇 생명 품어
늘 만삭인 채로
하늘도 강물도 다 품는 바다
제멋대로 찾아든 불청객 바람에
부서지고 흩어져도
기력 다한 바람 잦아들고
파도가 다시 바다 되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원망 따윈 애당초 품은 적조차 없는
초연하고 당당한 바다
수시로 태풍 몰아치는
우리네 삶
가슴 후비며 스치더라도
파도가 바다로 돌아오듯
상흔 없이 평온 되살아나
뜨고 지는 햇살 시샘하는
잿빛 구름 달래어
환희의 빛으로 물들이는
바다처럼 살 수는 없을까

바다가 보고싶다 / 김미경 시인
아득한 수평선 위로
비단배 돛을 달아
하염없이 흘러가고
꽃 구름 머무는 하늘가엔
꽃 향기 바람에 실려
그리움이 나부낀다.
하얀 포말 위에
새겨진 이름 하나를
비단배 돛을 달아 꽃 구름에 날려보낸
작은 행복을 꿈꿔 오던 나의 바다여

바다랑 같이 살자 / 김정래 시인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 바다가 보이는
언덕위에 조그만 집짓고
너랑나랑 오순도순 살자
밤이면 창을 열어
파도치는 밤바다를 보면서
당신은 내 옆에 앉아
벼루에 먹을 갈고
난 당신이 간 먹물에
붓을 찍어 글을 쓸련다.
주위에 아무도 없어
조금 외로우면 어떠랴
내 옆에 당신 있고
당신 옆에 내 있는데
갈매기도 있고
철썩이는 파도도 있는데
우리 그들을 친구하며
사랑하며 살자꾸나
날마다 아침이면
수평선 위로 얼굴 내미는
해를 볼 수 있다
환하게 웃으며 올라오는
해를 볼 수 있어 얼마나 좋으냐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 바다가 보이는
언덕위에 조그만 집짓고 살자
그리하여
난 당신 사랑만 먹고
당신은 내 사랑만 먹으며
바다랑 친구하며 살자

새벽바다 / 송정숙 시인
바다는 밤마다 별을 따서
바다에 풀어 놓는다
바다는 밤마다 꿈을 풀어
파도를 만든다
바다는 밤마다 돌섬 작은 곳에
시를 숨겨 놓는다
새는 시를 물어와
모래밭에 뿌려놓는다
다시 밤이 되면
하늘에 별이 되는 시

상처난 바다 / 강남주 시인
아침 바다는
언제나 안개 속에서 눈뜬다.
간밤의 난행,
그 무수한 난행에
마른 기침 삼키며
피곤을 일으킨다.
누가 아나요?
이내 마음을.
깊은 생채기,
끝없이 깊은 곳의
캄캄한 아픔을.
겹겹으로
천근 만근으로
짓느르는 안개에
허우적거리는 사지(四肢)
바다는 언제나
찢어진 옷매무새로
안개 속을 눈뜬다.

바다로 나가는 이유 / 윤수천 시인
바다에 살던 사람은
육지에서 살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오래
정박당하지 못한다
풍랑과 파도를
헤쳐 나가는 쾌감
그 쾌감에 한 번 빠져본 사람은
죽음까지도 쾌감이다
더구나 망망대해에서
누군가를 그리워 본 사람은
또 바다를 나가야 한다
그 최상의 고독을 접어두고 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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