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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취미생활 잔치마당/문학

[자작글] 다 사람 사는 곳인데요

by meta-verse 2025.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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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다 사람 사는 곳인데요"라는 제목으로 자작 글을 포스팅합니다.


나는 사회복지사로 복지 관련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기에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상담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데 대부분 생활이 어려운 취약계층이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기에 정신적 여유가 없어 예민한 분들이 좀 많은 편이다.
 
어느 비오는 날 택시 운전하면서 근근이 생활하는 뭔가 불만이 가득 찬 모습의 60대 초반의 김동수(가명)라는 분이 내방했다. 앉자마자 그는 유튜브를 보면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100여 가지 복지혜택이 있다는 데 모두 안내하라고 큰 목소리로 담당자에게 다그치듯이 말하면서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모습을 보인다.
 
담당자는 10년 정도 복지 관련일을 하고 있는 30대 후반 남자로 민원인의 위세에 눌려 조용히 듣고 있다가 그런 상황에서 신청할 수 있는 복지혜택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준다. 설명하는 도중에도 말을 수시로 끊으면서 왜 그런 걸 이제야 이야기하냐면서 공격적인 말투를 이어나간다. 
 
담당자가 우리나라는 신청주의기에 개인정보 등을 이유로 신청한 사람에게만 복지혜택이 주어진다고 약간 주눅 든 상태에서 관련 법령 등을 설명하면서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렇게 조곤조곤 말을 하고 있는 담당자의 말을 중간에 끊고 일반 국민이 그런 걸 다 어떻게 아냐고 소리치며 행정이 잘못됐다고 하면서 보건복지부 등에 민원 넣겠다고 화가 잔뜩 난 상태로 문을 박차고 나가버린다.
 
우리 팀은 이분이 관할 지역 주민이기에 다시 올 것으로 예상하고 나름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담당자가 민원 스트레스로 힘들 수 있고, 민원 보러 온 또 다른 선량한 주민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분에 대해 같은 동네 살고 있으면서 나이도 좀 있는 내가 맨투맨으로 나서기로 했다. 예상한 대로 며칠 후 다시 복지관으로 내방하였다. 여전히 얼굴에는 불만 가득 찬 모습이었다. 어떤 일로 오셨냐고 했더니 취약계층 자격 좀 신청해야겠다고 퉁명스럽게 이야기하면서, 자기가 이런 처지에 오게 된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어댄다. 5년 동안 전 재산을 투입하여 연구 개발한  2차전지 관련 제품을 특허 냈는데 대기업이 조금 업그레이드해서 특허료 없이 사용하는 바람에 자기는 빚더미에 올랐다는 이야기였다.
 
평상시에는 민원인과 이렇게 개인적인 이야기로 오랜시간 상담하지 않지만, 이 분의 경우에는 이사 가지 않는 한 계속 부딪힐 것이기에 본인과 주변 사람들을 위해 특별관리가 필요한 경우라 인내심을 갖고 들어줬다. 이야기를 진지한 눈빛으로 진심을 담아 들어주면서 공감해 줬더니 차츰 누그러워지기에.. 그 틈을 타서 자존감을 지켜주기 위해 김동수 님은 젊었을 때 나라를 위해 세금을 많이 냈기에 어려운 상황이 왔을 때는 반대로 나라에 도움을 청하는 것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마음 다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런 후, 우선 신청 가능한 것만 친절하게 상세히 설명하면서 도와주고, 안 되는 것은 법적 근거를 보여주면서 이해를 구했다. 그렇게 조금씩 소통해 나가면서 편들어 주니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점차 서로 이해하게 되면서 길 가다 만나면 인사도 나누는 사이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김동수 님 본인도 복지관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도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복지 관련 서비스와 상관없는 개인적인 애로사항, 예를 들면 핸드폰으로 신청해야 하는 작업이라든지 아파트 재계약 시 조언 등도 부탁하는데 이런 경우도 같은 주민으로서 내일처럼 도와주곤 했다. 
 
이렇게 서로 몰라서 또는 오해로 적대적이었던 마음의 문은 열리고, 이제는 복지 관련 일로 내방하여 직원과 상담 시에도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끝나고 나갈 때에는 여기 직원들 다 친절하다고 말하면서 수고했다고 인사하고 간다.
 
이런 걸 보면 본래 나쁜 사람은 없으며, 다 사람 사는 곳이기에 삶의 방식만 약간 다를 뿐 어디서나 다 비슷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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