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지용 시인의 주옥같은 시 모음을 포스팅합니다.
바다 1 / 정지용 시인
고래가 이제 횡단한 뒤
해협이 천막처럼 퍼덕이오.
...... 힌 물결 피여오르는 아래로 바독돌 자꼬 자꼬 나려가고,
은방울 날리듯 떠오르는 바다종달새......
한나절 노려보오 훔켜잡어 고 빩안살 빼스랴고.
※
미억닢새 향기한 바위틈에
진달레꽃빛 조개가 해ㅅ살 쪼이고,
청제비 제 날개에 미끄러져 도 ㅡ 네
유리판 같은 하늘에.
바다는 ㅡ 속속 드리 보이오.
청대ㅅ닢 처럼 푸른
바다
봄
※
꽃봉오리 줄등 켜듯한
조그만 산으로 ㅡ 하고 있을까요.
솔나무 대나무
다옥한 수풀로 ㅡ 하고 있을까요.
노랑 검정 알롱 달롱한
블랑키트 두르고 쪼그린 호랑이로 ㅡ 하고 있을까요.
당신은 "이러한풍경"을 데불고
힌 연기 같은
바다
멀리 멀리 항해합쇼
<<시문학>> 2호, 1930. 5
* 다옥한 : 무성한
* 블랑키트 : 블랭킷, 담요
바다 2 / 정지용 시인
바다는 뿔뿔이
달어 날랴고 했다.
푸른 도마뱀떼 같이
재재발렀다.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었다.
힌 발톱에 찢긴
산호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가까스루 몰아다 부치고
변죽을 둘러 손질하여 물기를 시쳤다.
이 앨쓴 해도에
손을 싯고 떼었다.
찰찰 넘치도록
돌돌 굴르도록
희동그란히 바쳐 들었다!
지구는 연닢인양 옴으라들고......펴고......
<<시원>> 5호, 1935. 12
* 변죽 : 그릇이나 세간 따위의 가장자리
비로봉 / 정지용 시인
백화 수풀 앙당한 속에
계절이 쪼그리고 있다.
이곳은 육체 없는 적막한 향연장
이마에 스며드는 향료로운 자양!
해발 오천 피이트 권운층 우에
그싯는 성냥불!
동해는 푸른 삽화처럼 옴직 않고
누뤼 알이 참벌처럼 옮겨 간다.
연정은 그림자 마자 벗쟈
산드랗게 얼어라! 귀뚜라미처럼.
<<가톨릭청년>> 1호, 1933. 6
* 누뤼알 : 우박알
* 산드랗게 : '산드렇게' 보다 음상이 작은 말이다. '산드러지다'와 산득하다가 결합한 말로 추정된다. '산드러지다'는 말쑥하고 산뜻한 것을, '산득하다'는 몸의 느낌이 싸느란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산드렇게'는 "차가우면서도 맵씨있께"라는 뜻이 된다.
난초 / 정지용 시인
난초닢은
차라리 수묵색.
난초닢에
엷은 안개와 꿈이 오다.
난초닢은
한밤에 여는 담은 입술이 있다.
난초닢은
별빛에 눈떴다 돌아 눞다.
난초닢은
드러난 팔구비를 어쨔지 못한다.
난초닢에
적은 바람이 오다.
난초닢은
칩다.
<<신생>> 37호, 1932. 1
* 칩다 : 춥다
오월소식 / 정지용 시인
오동나무 꽃으로 불밝힌 이곳 첫여름이 그립지 아니한가?
어린 나그내 꿈이 시시로 파랑새가 되여오려니,
나무 밑으로 가나 책상 턱에 이마를 고일 때나,
네가 남기고 간 기억만이 소근 소근거리는구나.
모초롬만에 날러온 소식에 반가운 마음이 울렁거리여
가여운 글자마다 먼 황해가 남설거리나니.
......나는 갈메기 같은 종선을 한창 치달리고 있다......
쾌할한 오월넥타이가 내처 난데없는 순풍이 되여,
하늘과 딱닿은 푸른 물결우에 솟은,
외따른 섬 로만틱를 찾어 갈가나.
일본말과 아라비아 글씨를 아르키러간
쬐그만 이 페스탈로치야, 꾀꼬리 같은 선생님 이야,
날마다 밤마다 섬둘레가 근심스런 풍랑에 씹히는가 하노니,
은은히 밀려 오는듯 머얼리 우는 오ㄹ간 소리......
<<조선지광>>68호, 1927. 6
* 종선 : 큰배에 딸린 작은 배.
* 내처 : 어떤 일끝에 잇달아.
석류 / 정지용 시인
장미꽃 처럼 곱게 피여 가는 화로에 숫불,
입춘때 밤은 마른풀 사르는 냄새가 난다.
한 겨울 지난 석류열매를 쪼기여
홍보석 같은 알을 한알 두알 맛 보노니,
투명한 옛 생각, 새론 시름의 무지개여,
금붕어처럼 어린 녀릿 녀릿한 느낌이여.
이 열매는 지난 해 시월 상ㅅ달, 우리 들의
조그마한 이야기가 비롯될 때 익은것이어니.
자근아씨야, 가녀린 동무야, 남몰래 깃들인
네 가슴에 조름 조는 옥토끼가 한쌍.
옛 못 속에 헤염치는 흰고기의 손가락, 손가락,
외롭게 가볍게 스스로 떠는 은실, 은실,
아아 석류알을 알알히 비추어 보며
신라천년의 푸른 하늘을 꿈꾸노니.
<<조선지광>> 65, 1927. 3
* 녀릿한 : 느리면서도 가냘픈 느낌.
*상ㅅ달 : 햇곡식을 신에게 드리기에 가장 좋은 달이라는 뜻으로 '시월'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갑판 우 / 정지용 시인
나지익 한 하늘은 백금빛으로 빛나고
물결은 유리판 처럼 부서지며 끓어오른다.
동글동글 굴러오는 짠 바람에 뺨마다 고흔피가 고이고
배는 화려한 김승처럼 짓으며 달려나간다.
문득 앞을 가리는 검은 해적같은 외딴섬이
흩어저 날으는 갈매기떼 날개 뒤로 문짓 문짓 물러나가고,
어디로 돌아다보든지 하이한 큰 팔구비에 안기여
지구덩이가 동그랐타는 것이 길겁구나.
넥타이는 시언스럽게 날리고 서로 기대슨 어깨에 육월볕이
시며들고
한없이 나가는 눈ㅅ길은 수평선 저쪽까지 기폭처럼 퍼덕인다.
※
바다 바람이 그대 머리에 아른대는구료,
그대 머리는 슬픈듯 하늘거리고.
바다 바람이 그대 치마폭에 니치 대는구료,
그대 치마는 부끄러운듯 나붓기고
그대는 바람 보고 꾸짖는구료.
※
별안간 뛰여들삼어도 설마 죽을라구요
빠나나 껍질로 바다를 놀려대노니,
젊은 마음 꼬이는 구비도는 물구비
두리 함끠 굽어보며 가비얍게 웃노니.
<<문예시대>> 2호, 1927.1
* 문짓 문짓 - 망설이고 주저하는 모습을 "문칫문칫거리다"라고 한다.
* 니치 대는구료 - "니치대다"의 활용으로 "이치다"(이아치다의 준말로 거치적거리거나 못된짓으로 일을 방해한다는 뜻)의 방언으로 보인다.
*뛰여들삼어도 - 뛰어든다 하더라도

조약돌 / 정지용 시인
조약돌 도글도글......
그는 나의 혼의 조각 이러뇨
알는 피에로의 설음과
첫길에 고달픈
청제비의 푸념 겨운 지줄댐과,
꾀집어 아즉 붉어 오르는
피에 맺혀,
비날리는 이국거리를
탄식하며 헤매노나.
조약돌 도글도글......
그는 나의 혼의 조각 이러뇨.
<<동방평론>> 4호, 1932. 7

[참고자료]
- 정지용 전 시집 (지은이 : 정지용 / 발행처 : 스타북스 / 2023년 12월20일 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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