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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 멋진 시 모음 (담쟁이, 슬픔에게 안부를 묻다 등)

by meta-verse 2024.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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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옥같은 멋진 시를 몇 편 포스팅합니다.


겨울나무 / 오보영 시인
 
나 비록
지금은 
앙상해진 모습으로
볼품없을지라도
 
내겐 
희망이 있단다
파릇한 새싹
싱싱한 잎으로 단장을 해서
 
기다리는 님께 기쁨을 주고
풍성한 맘 안겨다 줄 
꿈이 있단다


겨울나무 / 이정하 시인
 
그대가 어느 모습
어느 이름으로
내 곁을 스쳐 지나갔어도
그대의 여운은 
내 가슴에 
여울 되어 어지럽다
 
따라나서지 않은 것이
꼭 내 얼어붙은 
발 때문만이 아니었으리
 
붙잡기로 하면
붙잡지 못할 것도 아니었으나
안으로 
그리움 삭일 때도 
있어야 하는 것을 
 
그대 향한 마음이
식어서도 아니다
잎잎이 그리움 떨구고 
속살 보이는 게
무슨 부끄러움이 되랴?
무슨 죄가 되겠느냐?
 
지금 내 안에는 
그대보다 더 큰 사랑
그대보다 더 소중한 
또 하나의 그대가 
푸르디푸르게
새 움을 틔우고 있는데.


겨울밤 / 이재무 시인
 
싸락눈이 내리고 날은 저물어
길은 보이지 않고
목쉰 개 울음만 빙판에 자꾸
엎어지는데 식전에 나간 아부지
여태 돌아오시지 않는다
 
세 번 데운 황새기 장국은 쫄고
벽시계가 열 한 시를 친다
 
무거워 오는 졸음을 쫓고
문고리를 흔드는 기침 소리에
놀래 문 열면
싸대기를 때리는 바람
 
이불속 묻어 둔 밥
다독거리다 밤은 깊어
 
살강 뒤지는 새앙쥐 소리
서울행 기적 소리 들리고 오 리 밖
 
상엿집 지나 숱한 설움 짊어지고
된바람 헤쳐오는 가뿐 숨소리
들린다 여태 아부지는 오시지 않고


겨울사랑 / 문정희 시인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고마운 기쁨 / 이해인 수녀
 
적당히 숨기려 해도 
자꾸만 웃음으로 
빠져나오네
 
억지고 찾지 않아도
이제는 내 안에
뿌리 박힌 그대
 
어디에 있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내가 부르기만 하면
얼른 달려와 날개를 달아주는 
얼굴 없는 나의 천사
고마운 기쁨이여


기쁨 / 나태주 시인
 
난초 화분의 휘어진 
이파리 하나가
허공에 몸을 기댄다
 
허공도 따라서 휘어지면서
난초 이파리 살그머니
보듬어 안는다
 
그들 사이에 사람인 내가 모르는 
잔잔한 기쁨의 
강물이 흐른다.


낙엽 / 도종환 시인
 
헤어지자
상처 한 줄 네 가슴에 긋지 말고
조용히 돌아가자
 
수없이 헤어지자
네 몸에 남았던 내 몸의 흔적
고요히 되가져가자
 
허공에 찍었던 발자국 가져가는 새처럼
강물에 담았던 그림자 가져가는 달빛처럼
 
흔적 없이 헤어지자
오늘 또다시 떠나는 수천의 낙엽
낙엽


눈 위에 쓴 시 / 류시화 시인
 
누구는 종이 위에 시를 쓰고
누구는 사람 가슴에 시를 쓰고
누구는 자취 없는 허공에 대고 시를 쓴다지만
 
나는 십이월을 눈 위에 시를 쓴다
눈이 녹아버리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시


담쟁이 / 도종환 시인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착 / 문정희 시인
 
이름도 무엇도 없는 역에 도착했어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 더 많았지만
 
아무것도 아니면 어때
지는 것도 괜찮아
지는 법을 알았잖아
슬픈 것도 아름다워
내던지는 것도 그윽해
 
하늘이 보내준 순간의 열매들
아무렇게나 매달린 이파리들의 자유
벌레 먹어
땅에 나뒹구는 떫고 이지러진
이대로 
눈물 나게 좋아
 
이름도 무엇도 없는 역
여기 도착했어


배경이 되는 기쁨 / 안도현 시인
 
살아가면서 가장 아름다운 일은 
누구의 배경이 되어주는 것이다
 
별을 빛나게 하는 
까만 하늘처럼
 
꽃을 돋보이게 하는 
무딘 땅처럼
 
함께 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연어 떼처럼


별리 / 나태주 시인
 
우리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
 
그대 꽃이 되고 풀이되고
나무가 되어
내 앞에 있는다 해도 차마
그대 눈치채지 못하고
 
나 또한 구름 되고  바람 되고
천둥이 되어
그대 옆을 흐른다 해도 차마
나 알아보지 못하고
 
눈물은 번져
조그만 새암을 만든다
지구라는 별에서의
마지막 만남과 헤어짐
 
우리 다시 사람으로는 
만나지 못하리


사랑의 기쁨 / 정연복 시인
 
님이 내 맘에 찾아오신
그날 그 순간부터
사랑으로 출렁이는 이 가슴
 
사랑은 나를 
잠 못 이루게 한다
 
동트는 새벽이면
꽃잎은 영롱한 이슬에 젖고
내 가슴은 그리움에 젖는다
 
눈부신 아침이면
대지는 화사한 햇살로 잠이 깨고
나는 님 생각으로 잠이 깬다
 
해 떨어지는 저녁이면
만물은 어둠으로 물들고 
내 가슴은 그리움으로 물든다
 
달빛 은은한 밤이면
하늘에는 별이 총총
내 맘속에는 님의 모습은 반짝반짝
 
이 세상에 
내가 사랑하는 한 사람 있어
이리도 벅찬 이 가슴
 
사랑은 나를 잠 못 이루게 하지만
나는 이 사람을 도무지 접을 수 없다
 
이 넓고 넓은 세상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사랑하는 단 한 사람 있어
늘 파르르 떠는 이 가슴
 
그리움의 몸살을 앓는 
사랑의 기쁨


 

사랑의 길 / 정연복 시인
 
오래오래 
사랑해 본 사람은 안다
 
누군가를 온 마음으로
깊이 사랑해 본 사람은 안다
 
사람의 기쁨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사랑의 슬픔을 
아홉 개쯤 지나야 한다는 것
 
사랑의 길은 
마냥 행복한 꽃길이기는커녕
 
숱한 고통과 인내로 이어지는 
기다린 가시밭길이라는 것
 
사랑은 손쉽게 
꽃 한 송이 피우는 일이 아니라
 
긴 세월을 두고 묵묵히 
나무 한 그루 기르는 일이라는 것


사로잡힌 기쁨 / 홍수희 시인
 
당신 생각으로 눈을 뜨고
당신 생각으로 잠이 든다네
 
아무도 모를 거야
사로잡힌 이 기쁨을
 
당신 때문에 바람은 슬피 운다네
때로 당신으로 하여
슬픔이 가슴을 저리게 해도
 
나는 알고 있지
사랑은 달콤한 아픔이라는 걸
다시 이 세상 산다 하여도 
뿌리칠 수 없는 눈물이란 걸
 
당신 때문에 태양은 뜨고
무지개는 눈부시게 피어오르지
 
아무도 모를 거야
사로잡힌 이 기쁨을 
당신 생각으로 하루가 열리고
하루가 저무는 이 기쁨을


슬픔에게 안부를 묻다 / 류시화 시인
 
너였구나
나무 뒤에 숨어 있던 것이
인기척에 부스럭거려서 여우처럼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슬픔, 너였구나
 
나는 이 길을 조용히 지나가려 했었다
날이 저물지 전에
서둘러 이 겨울숲을 떠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를 깨우고 말았구나
내가 탄 말도 놀라서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숲 사이 작은 강물도 울음을 죽이고
잎들은 낮은 곳으로 모인다
여기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또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한때 이곳에 올려 퍼지던 메아리의 주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무들 사이에 오가는 흰 새의 날개들 같던 
그 눈부심은
박수치며 날아오르던 그 세월들은
너였구나
 
이 길 처음부터 나를 따라오던 것이
서리 묻은 나뭇가지 흔들어
까마귀처럼 놀라게 하는 것이
너였구나
 
나는 그냥 지나가려 했었다
서둘러 말을 타고 이 겨울숲과 작별하려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에게 들키고 말았구나
슬픔, 너였 구나


억새밭에서 / 손계 차영섭 시인
 
한해 두 해 언제 쓸쓸한 억새 곁, 
가을 더불어 억새는 홀씨로 모두 날려 보내고
바싹 마른 몸으로 한 겨울을 보낸다
 
추위가 누그러들고 봄이 오면 노란 억새밭엔 
신세대가 몰려온다 파란 새싹들이 서둘러 
놀나 늙은 세대를 밀어낸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면 억새밭엔 제법
파란 군단이 점령하고 늙은 패잔병은 철수한다
파도처럼 밀려가고 밀려오는 바다는 슬프다
 
떠나가고 새로 오고, 이건 자연뿐만 아니다
인간 세상에도 파도 현상은 얼마든지 있다
소멸(消滅) 과 신생(新生) , 땅에 파도다 


함께 / 혜원 전진옥 시인
 
새로운 도전으로 다시 시작하며
꿈을 향한 날갯짓
내일의 가치를 더하니
 
너와 나 함께라는 약속이
우리 인생 항로에 
얼마나 큰 의미를 갖게 하는지
 
그런 우리 서로에게 
사랑이고 행복이며
넓은 세상이 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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