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외수 시인의 시를 포스팅합니다.
한세상 산다는 것 / 이외수 시인
한세상 산다는 것도
물에 비친 뜬구름 같도다
가슴이 있는 자
부디 그 가슴에
빗장을 채우지 말라
살아있을 때는 모름지기
연약한 풀꽃 하나라도
못 견디게 사랑하고 볼 일이다
봄날은 간다 / 이외수 시인
부끄러워라
내가 쓰는 글들은
아직 썩어 가는 세상의
방부제가 되지 못하고
내가 흘린 눈물은
아직 고통받는 이들의
진통제가 되지 못하네
돌아보면 오십 평생
파지만 가득하고
아뿔사
또 한 해
어느새 유채꽃 한 바지게 젊어지고
저기 언덕 너머로 사라지는 봄날이여
기다림 / 이외수 시인
어느 날은 속삭이듯
배꽃나무 그늘로
스미고 싶다던 그대여
스며 그에게로
가닿을 수 있다면
터진 꽃망울의 속살로
피어날 수 있다면
한 꽃나무에서 다른 꽃나무로
흐를 수만 있다면
노을 / 이외수 시인
허공에 새 한 마리
그려 넣으면
남은 여백 모두가 하늘이어라
너무 쓸쓸하여
점하나를 찍노니
세상사는 이치가
한 점안에 있구나.
안개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그가 말했다.
수은등 밑에 서성이는
안개는
더욱 슬프다고
미농지처럼 구겨져
울고 있었다
함께 있는 때 / 이외수 시인
세상에 신의 사랑 가득한 줄은
풀을 보고 알 것인가
꽃을 보고 알 것인가
눈을 감아라 보이리니
척박한 땅에 자라난
그대 스스로 한 그루 나무
실낱같은 뿌리에
또 뿌리의 끝
하나님의 눈은 보이지 않고
다만 존재할 뿐
사람이여
정답다 우리
함께 있는 때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 이외수 시인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바람 부는 날에는
바람 부는 쪽으로 흔들리나니
꽃 피는 날이 있다면
어찌 꽃 지는 날이 없으랴
온 세상을 뒤집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밤에도
소망은 하늘로 가지를 뻗어
달빛을 건지리라
더러는 인생에도 겨울이 찾아와
일기장 갈피마다
눈이 내리고
참담한 사랑마저 소식이 두절되더라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침묵으로
침묵으로 깊은 강을 건너가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별 / 이외수 시인
내 영혼이 죽은 채로 술병 속에
썩고 있을 때
잠들어 이대로 죽고 싶다
울고 있을 때
그대 무심히 초겨울 바람 속을 걸어와
별이 되었다
오늘은 서울에 찾아와 하늘을 보니
하늘에는 자욱한 문명의 먼지
내 별이 교신하는 소리 들리지 않고
나는 다만 마음에 점 하나만 찍어 두노니
어느 날 하늘 맑은 땅이 있어
문득 하늘을 보면
그 점도 별이 되어 빛날 것이다
겨울비 / 이외수 시인
모르겠어
과거로 돌아가는 터널이
어디 있는지
흐린 기억의 벌판 어디쯤
아직도 매장되지 않는 추억의 살점
한 조각 유기 되어 있는지
저물녘 행선지도 없이 떠도는 거리
늑골을 적시며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
모르겠어 돌아보면
폐쇄된 시간의 건널목
왜 그대 이름 아직도
날카로운 비수로 박히는지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 이외수 시인
저녁비가 내리면
시간의 지층이
허물어진다
허물어지는 시간의 지층을
한 겹씩 파내려 가면
먼 중생대 어디쯤
화석으로 남아있는
내 전생을 만날 수 있을까
그때도 나는
한 줌의 고사리풀
바람이 불지 않아도
저무는 바다 쪽으로 흔들리면서
눈물보다 투명한 서정시를
꿈꾸고 있었을까
저녁비가 내리면
시간의 지층이
허물어진다
허물어지는 시간의 지층
멀리 있어 그리운 이름일수록
더욱 선명한 화석이 된다
외로운 세상 / 이외수 시인
힘들고 눈물겨운 세상
나는 오늘도 방황 하나로 저물녘에 닿았다
거짓말처럼 나는 혼자였다
만날 사람이 없었다
보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그냥 막연하게 사람만 그리워졌다
사람들 속에서 걷고 이야기하고 작별하면서 살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결코 섞여지지 않았다
그것을 잘 알면서도 나는 왜 자꾸만
사람이 그립다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도무지 알 수 없는 한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결국
내가 더 사랑한다고 느낄 때
외로움을 느낀다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 이외수 시인
인간은 누구나 소유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대상을 완전무결한
자기 소유로 삼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지요
아예 그것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내 꺼는 없어, 라는
말을 대부분이 진리처럼
받아들이면서 살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오늘 제가 어떤 대상이든지
영원한 내 꺼로 만드는
비결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그 대상이 그대가 존재하는 현실
속에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세요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순간 그 대상은
영원한 내꺼로 등재됩니다
비록 그것이 언젠가는 사라져 버린다
하더라도 이미 그것은 그대의
영혼 속에 함유되어 있습니다
다시 새로운 한 날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많은 것들을 소유하는 삶보다
많은 것들에 함유되는
삶이 되시기를 빌겠습니다
강이 흐르리 / 이외수 시인
이승은 언제나 쓰라린 겨울이어라
바람에 베이는 살갗
홀로 걷는 꿈이어라
다가오는 겨울에는 아름답다
그대 기다린 뜻도
우리가 전생으로 돌아가는 마음 하나로
아무도 없는 한적한 길
눈을 맞으며 걸으리니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마디
겨울이 끝나는 봄녘 햇빛이 되고
오스스 떨며 나서는 거미의 여린 실낱
맺힌 이슬이 되고
그 이슬에 비치는 민들레 되리라
살아있어 소생하는 모든 것에도
죽어서 멎어 있는 모든 것에도
우리가 불어넣은 말 한마디
아
사랑한다고
비로소 얼음이 풀리면서
건너가는 나룻배
저승에서 이승으로 강이 흐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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