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4. 취미생활 잔치마당/북리뷰

알베르 까뮈 소설 이방인 독후감

by meta-verse 2024. 4. 30.
반응형

소설 이방인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알베르 까뮈의 작품으로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이다. 이방인은 표면적으로는 소설 속의 주인공 뫼르소가 태양에 눈이 부셔 아랍인을 살해한 후 사형당하는 이야기지만, 내면적으로는 실존주의 사상이 흐르면서 독자에게 삶에 대해서 많은 생각과 울림을 주는 소설로 복선들이 중간중간 깔려있는데,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소설 이방인의 전반부

 
이 소설은 주인공인 뫼르소가 독백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소설 속의 주인공 청년 뫼르소는 알제에서 선박 중개인 사무실의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마랭고의 양로원에 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고 장례를 치른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그의 무관심함과 타인과의 괴리감을 보여 주며, 장례식이 끝나고 돌와와서도 무덤덤하게 예전 직장 동료였던 마리를 만나 유쾌한 영화를 보고 해수욕을 즐기며 사랑도 나눈다.

이렇게 소설 전반부는 단순하게 별 의미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즉흥적인 인물로 뫼르소를 묘사하고 있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뫼르소는 한 아파트에 사는 살라마노영감, 레몽 등과 알게 지내며, 그중에도 레몽과 친하게 지내는데, 레몽의 애인이 변심하여 레몽이 전 애인에게 복수하려는 계획에 동참하게 된다. 
 
뫼르소는 레몽과 함께 바닷가의 마송의 별장으로 놀러 갔다가 해변가에서 그들을 미행하던 아랍인들과 마주친다. 그들 중에 레몽 옛 애인의 오빠가 있었고, 싸움이 크게 벌어져 레몽이 칼에 찔리는 등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소동이 마무리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답답함을 느낀 뫼르소는 다시 바닷가로 나가 시원한 샘가로 간다. 그곳에는 낮에 레몽을 찌른 아랍인이 한가로이 누워있었는데 뫼르소와 서로 마주친다. 서로 마주치는 순간 그 아랍인이 꺼낸 칼의 햇볕에 반사된 강렬한 빛 때문에 뫼르소는 자신도 모르게 권총의 방아쇠를 한발 먼저 쏜 후, 잠시 멈칫거리다가 추가로 네발을 더 쏴서 살해한다. 
 
이 살해의 장면을 묘사한 소설 내용을 보면,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도 않고 칼을 뽑아 나를 겨누었다. 태양빛이 칼 위에서 번쩍 튀었다. 기다란 칼날이 되어 내 이마를 쑤시는 듯했다.. 동시에, 눈썹에 맺혔던 땀이 한꺼번에 눈꺼풀 위로 흘러내려서 두꺼운 막으로 미지근하게 눈두덩을 덮었다. 눈물과 소금의 장막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마 위로 태양이 때리는 심벌즈소리와 칼에서 뻗어 나온 눈부신 빛만이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그 칼날은 속눈썹을 쑤셨고 괴로운 두 눈을 파내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 모든 게 흔들렸다. 바다는 무겁고 뜨거운 바람을 실어왔다. 온 하늘이 활짝 열려 불의 비를 쏟아 내는 것 같았다. 내 온몸이 팽팽하게 긴장되었다. 손으로 권총을 힘 있게 잡았다. 방아쇠는 당겨졌고, 매끈한 권총 자루의 배가 만져졌다. 바로 그 순간 짤막하면서도 귀를 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모든 게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 버렸다. 그리고 한낮의 균형, 행복을 느끼던 바닷가의 침묵도 깨뜨려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나는 움직이지 않는 아랍인의 몸에 다시 네발을 쏘았다. 총알은 보이지도 않게 깊숙이 박혔다. 마치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 같았다."


소설 이방인의 후반부

 
아랍인을 살해한 죄로 뫼르소는 살인죄 재판을 받게 되는데, 감옥에 갇히다 보니 좋아하는 담배도 못피우고 여자친구인 마리도 못 만나는 등 욕구가 제약되니 어쩔 수 없이 죽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재판과정에서도 아랍인을 살해한 이유가 단순히 태양때문이라는 그의 진술도 사람들의 공감을 못 얻는 등 살인에 대한 후회하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아 도덕성이 결여된 인물로 간주된다. 즉 재판과정에서 이방인의 모습으로 무관심, 소통부족 및 소외, 편견 등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도 못하게 되어 재판이 불리하게 진행되어 간다. 
 
실제 뫼르소도 자신의 행위에 대한 후회나 무죄주장보다는 그저 권태롭다고 느낄 뿐이며, 오히려 자신의 무죄보다는 삶과 존재의 의미, 인간의 본성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진다.

이렇게 뫼르소는 억지로 인과관계를 만들려는 세상의 부조리와 소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검사도 이런 이유로 정상참작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사형을 구형하고 판사는 사형을 선고한다.
 
그러나 마지막에 뫼르소는 그러한 세상의 부조리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뫼르소 자신이 세상을 보는 무관심과 자연의 무관심이 일치하다는 것을 깨닫고 비로소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소설 속에서 살펴보며,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결국 서른 살에 죽는 것이나 예순 살에 죽는 것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아무튼 가장 분명한 것은 지금이 됐건 이십 년 후가 됐건 언제든 죽게 될 사람은 바로 나라는 사실이다"
 
"내가 죽은 다음 사람들이 나를 잊어버린다는 것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 일은 생각하기 괴로운 것도 아니었다."
 
"사제가 말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도와주실 겁니다. 내가 만났던, 당신과 같은 처지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갔습니다. 나는 그건 그 사람들의 권리라고 인정했다. 그들에게 그럴 만한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누구의 도움도 받기 싫었고 무엇보다 아무 흥미를 끌지 못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기에는 내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혹시 내가 사형선고를 받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냐고 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오두 사형선고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가로막으며 그건 내 경우와 다르며 그게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사제가 말했다. 그거야 그렇지요. 하지만 당신이 오늘 죽지 않는다고 해도 언젠가는 죽겠지요. 그때가 되면 또 같은 문제가 생깁니다. 그 무서운 시련을 어떻게 견뎌 내실 겁니까? 나는, 지금과 완전히 똑같이 그 시련을 맞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당신은 아무런 희망도 없습니까? 당신이 곧 죽어 완전히 없어져 버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사제는 내가 짐을 지고 있으니 그걸 벗어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들의 심판은 아무것도 아니며, 하나님의 심판만이 전부라고 했다. 나는 내게 사형을 선고한 것은 인간의 심판임을 지적했다. 그러나 사제는 그렇다고 해서 내 죄가 씻긴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당신은 꽤나 자신만만한 태도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당신의 신념이란 것은 모두 여자 머리카락 한 올만큼의 가치도 없다. 당신은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없다. 내가 빈손인 듯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내게는 확신이라는 게 있다. 나 자신에 대한 것, 모든 것에 대한 확신, 당신보다 더한 확신, 내 인생과 곧 닥쳐 올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다. 그렇다 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이 진리가 나를 붙들고 있는 한 나도 이 진리를 붙들고 있다.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또 앞으로도 옳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살았지만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은 하고 저것은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을 하지 않은 대신 다른 일은 했다. 그래서 어쨌단 말이냐? 나는 마치 내 정당함이 인정될 이 새벽을 이제껏 기다리며 살아온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나는 그 이유를 잘 안다. 당신 역시 그 까닭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그 부조리한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항상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내 미래 저 밑바닥에서부터 불어오고 있었다. 그것은 아직 닥치지도 않은 세월을 거슬러서 말이다."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 날 것도 없는 이 세월 속에서, 내게 주어진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쓸고 지나가면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이나 어머니의 사랑 같은 것들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당신의 하나님,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과 운명,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오직 하나의 숙명만이 나를 선택하고, 오직 하나의 숙명만이 당신들같이 나의 형제라는 호칭을 쓸, 수많은 수혜자들을 선택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알아들을 수 있나사람들은 누구나 특권을 가진 존재다세상에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만 존재하는 것이다다른 사람들도 머지않아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당신 역시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살인범으로 고발당했으면서도 자기 어머니 장례식 때 울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을 받게 된다 한들 그게 뭐가 중요한가이 사형수야알기는 해미래의 저 밑바닥에서.. 이런 것들을 외쳐 대며 나는 숨이 막혔다."
 
"아무도, 그 누구도 엄마의 죽음에 눈물을 흘릴 권리는 없다. 나 역시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모든 고통을 씻어 주고 모든 희망을 비워준 듯, 온갖 징조들과 별들이 가득한 그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가 가진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이 열린 것이다."
 
"나와 세계가 무척 닮아 마치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려면 내게 남은 소원은 오직 하나, 내가 덜 외로워하도록 내가 사형집행을 받는 그날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 와 증오에 가득 찬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소설 속의 뫼르소는 일상생활에서 고립과 소외감을 느끼면서 삶 속에서 진실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한다.

인간 존재와 존재의 무의미함 느끼면서 사회의 부조리와 사회적 규범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며, 전통적인 도덕적·사회적 가치에도 동조하지 않으며, 심지어 자신의 삶과 죽음에서조차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그는 이방인으로서 자신만의 진실과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사회적 규범과는 괴리된 삶을 이어가는데, 뫼르소의 태도는 겉으로는 무감각하고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의 이방인으로서의 삶은 사회적 규범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와 진실을 추구하는 모습에서 인간 본연의 자유를 느낀다.
 
죽음과 마찬가지로 삶이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인간의 주관적 의지와는 무관하게 삶 자체는 근본적으로 죽음을 앞에 두고 있다는 모순을 드러낸다. 그리고 내일에 대한 약속이나 희망없이 이 모순 사이에 끼여서 그저 삶을 살 뿐인 인간에게 한 사람의 죽음이란  어떤 의미 있는 사건이 될 수 없다는 부조리가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결국 이방인은 우리 각자 내면에 존재할 수 있는 이방인의 모습을 드러내며, 인간 자체의 본래적인 고독과 자유, 그리고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도전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사실 우리 대부분도 본심에 배반하는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등 이 사회의 이방인이 될 수 있으며, 삶의 부조리함과 개인의 자유 의지 사이의 괴리를 생각하면서 삶의 의미를 고민하게 한다. 즉, 인간 자체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의문을 품으며, 우리가 각자 사회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하게 되는데, 이 소설이 그런 측면에서 어느 정도 방향성을 제시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반응형
소설 이방인에서 까뮈가 말하고 싶은 것

 
소설은 어머니의 죽음에서 시작해서 뫼르소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작품 전체에 죽음이라는 이미지가 깔려서 전개되는데, 재판부에서 뫼르소의 행동을 분석하는 근거로 어머니의 죽음을 들고 있는데 반해, 뫼르소는 미래에 다가올 자신의 죽음에 관심이 있다. 
 
즉, 인간은 아무리 애를 써도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완전히 알 수 없고, 모든 일을 완전히 해낼 수도 없으며 반드시 죽기 마련이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영원에 대한 관심을 품는다거나, 다가올 내일에 대해서 희망을 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미래를 위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 해도, 결국 미래는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죽음을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까뮈는 삶의 끝은 결국 죽음이라면서 인생은 부조리한 것이다. 하지만 비록 인간의 삶이 부조리한 것이라 해도, 난 계속해서 오직 인간이기를 원한다.

즉,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생각하는 능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내 이성을 사용해서 끊임없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적이지 못한 신의 구원을 기대하지도 않을 것이며, 미래나 영원에 대한 희망이나 기대를 갖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바로 지금, 바로 여기의 삶에 충실할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알베르 까뮈(1913~1960)]

1913년 알제리의 몽드비에서 아홉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는데, 알자스 출신 광산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중에 전사한 뒤, 교육울 전혀 받지 못한 청각장애인 어머니와 할머니 아래에서 가난하게 자랐으며, 어릴 때부터 빈곤과 병고를 체험하며 삶과 죽음, 자신과 세계의 모순과 대립에 괴로워하며 성장하였다.

공립초등학교와 알제대학교 철학과에서 공부한 그는 1936년에 고등교육 수료증을 받고 교수가 되려고 했지만 결핵이 재발해 단념하고, 졸업 후 진보적 성향의 일간지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1942년 7월 존재의 부조리성(不條理性)을 다룬《이방인(異邦人)과 동일한 주제를 철학적 에세이로 풀이한 《시지프 신화(神話)를 발표하면서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고, 이어 《페스트(1947)의 출간으로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1951년에는 마르크시즘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평론 《반항하는 인간을 발표하여 사르트르를 포함한 프랑스 문인들과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1957년 마흔네 살의 젊은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카뮈는 장편소설《최초의 인간》집필 작업에 들어갔으나, 3년 후인 1960년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쳤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표리(表裏)》(1937), 《결혼》(1938), 《정의(正義)의 사람들》(1949), 《행복한 죽음》, 《안과 겉》, 《적지와 왕국》, 《전락(轉落)》(1956), 희곡 《오해(誤解)》(1944)와 칼리굴라(Caligula)》(1945) 등이 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참고자료]
- 이방인 : 알베르 까뮈 저, 김화영 번역, 민음사 출판(2019)
- 이방인 : 알베르 까뮈 저, 최헵시바, 미르북컴퍼니 출판(2020)
- 인터넷 교보문고 홈페이지
- 나무위키(인터넷 백과사전)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