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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 윤동주 시 모음(서시/ 별 헤는 밤/ 반디불/ 새로운 길/ 자화상/ 참회록/ 코스모스/ 달같이/ 쉽게 씌여진 시/ 흰그림자 등)

meta-verse 2024. 12. 23.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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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윤동주 시 모음에 대해서 포스팅합니다.


서시 / 윤동주 시인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일제치하에서 내면적 고뇌와 성찰을 통해 일제에 저항하는 시로서, 현 시대에도 여전히 성찰과 교훈과 감동을 주고 있다. 특히 죽음과 삶을 자연의 한 조각으로 보는 초월적 관점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과 더불어 개인적으로도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려고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시다.


별 헤는 밤 / 윤동주 시인 (1941.11.5.)
 
계절(季節)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들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색여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츰이 오는 까닭이오, 
내일(來日) 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청춘(靑春)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追憶)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詩)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小學校) 때 책상(冊床)을 같이 햇던 아이들의 일흠과 佩(패), 鏡(경), 玉(옥) 이런 異國少女(이국소녀)들의 일흠과, 벌써 애기 어마니 된 계집애들의 일흠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일흠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푸랑시스·잠」 「라이넬·마리아·릴케」 이런 시인의 일흠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北間道)에 게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우에
내 일흠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덥허 버리엇습니다.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버레는 
부끄러운 일흠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볕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여나듯이 
내 일흠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 1941년 11월 5일 지은 유작으로 담화체 형식으로 어머니에게 이야기하듯 애틋한 감정을 담고 있다. 별을 통해 어머니와 거리감을 극복해 주고 있으며, 또한 별을 통해 봄이 오리라는 굳은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나라는 일제치하에 있지만 곧 광복이 되라는 확신을 보여주고 있다. 


반디불 / 윤동주 시인 (1937년)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조각 주으러
숲으로 가자. 
 
--- 그믐달 반디불은 
--- 부서진 달조각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조각 주으러
숲으로 가자. 

 
 
※ 광활한 우주와 자연을 하나로 보면서 자연 속에 작은 것도 의미를 부여하여 희망과 위안을 찾는 시이다.


새로운 길 / 윤동주 시인 (1938.5월)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가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의대 진학을 원하는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1938년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한 그해 5월에 쓴 시이다. 


자화상(自畵像) / 윤동주 시인 (1941)
 
산모퉁이를 돌아
논 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 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1941년 연희전문 교우지 "문우"에 실린 작품으로, 우물 속에 비친 자연과 자기를 바라보며 성찰과 미움, 미움과 연민 등이 교차하는 마음을 나타낸 시다. 


참회록(懺悔錄) / 윤동주 시인 (1942.1.24.)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어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가
 
나는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주리자
- 만 이십사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든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웨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든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어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 일본 유학을 앞둔 1942년 1월 24일 어쩔 수 없이 일본 이름을 써야 하는 슬픈 현실에서 쓴 시다. 


공상(空想)/ 윤동주 시인
 
공상---
내 마음의 탑
나는 말없이 이 탑을 쌓고 있다
명예와 허영의 천공에다
무너질 줄 모르고
한 층 두 층 높이 쌓는다.
 
무한한 나의 공상
그것은 내 마음의 바다
나는 두 팔을 펼쳐서
나의 바다에서 
자유로이 헤엄친다. 
황금 지욕(知慾) 의 수평선을 향하여


삶과 죽음 / 윤동주 시인 (1934. 12. 24.)
 
삶은 오늘도 죽음의 서곡을 노래하였다
이 노래가 언제나 끝나랴
 
세상 사람은---
뼈를 녹여내는 듯한 삶의 노래에
춤을 춘다. 
사람들은 해가 넘어가기 전
이 노래 끝의 공포를 
생각할 사이가 없었다.
 
(나는 이것만은 알았다
이 노래의 끝을 맛본이들은 
자기만 알고
다음 노래의 맛을 알려주지 아니하였다.)
 
하늘 복판에 아로새기듯이 
이 노래를 부른 자가 누구뇨
 
그리고 소낙비 그친 뒤같이도 
이 노래를 그친 자가 누구뇨
 
죽고 뼈만 남은 
죽음의 승리자 위인들!

 


코스모스 / 윤동주 시인 (1938.9.20)
 
청초한 코스모스는 
오직 하나인 나의 아가씨, 
 
달빛이 싸늘히 추운 밤이면
옛 소녀가 못 견디게 그리워
코스모스 핀 정원으로 찾아간다. 
 
코스모스는
귀또리 울음에도 수줍어지고, 
 
코스모스 앞에선 나는 
어렸을 적처럼 부끄러워지나니, 
 
내 마음은 코스모스의 마음이요
코스모스의 마음은 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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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같이 / 윤동주 시인 (1939.9월)
 
연륜이 자라듯이
 
달이 자라는 고요한 밤에
 
달같이 외로운 사랑이
 
가슴 하나 뻐근히 
 
연륜처럼 피어나간다. 


쉽게 씌어진 시 / 윤동주 시인 (1942년)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일제강점기인 1942년 일본 유학 중 쓴 시로 암울한 현실과 내적 갈등 즉, 고뇌와 자기 성찰 등 자기반성을 표현한 작품이다. 
 
※ 육첩방(六疊房) : 일본식 다다미방


흰 그림자 / 윤동주 시인 (1942.4.14.)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 종일 시들은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든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든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고장으로 돌려 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지는 흰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든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 보낸 뒤
허전한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信念)이 깊은 으젓한 양(羊)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 


십자가 / 윤동주 시인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일제 강점기에 국가와 민족의 고통과 개인적인 신앙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담은 시로, 조국을 위해 몸 바치고자 하는 결의를 보여주는 시다.


윤동주(1917.12.30~1945.2.16)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중화민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의 유복한 집안에서 개신교 장로이자 소학교 교사인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 사이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31년 3월에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인 소학교인 화룡현 관립 제1소학교에  6학년으로 편입하여 1년간을 배운다.(이때의 경험이 그의 시 "별 헤는 밤"의 "패, 경, 옥 등 이국 소녀들의 이름"이 구절로 나타난다)
 
1932년에 미션스쿨인 은진중학에 입학하였고, 1935년 조선 평양 숭실중학교에 전학하였다가 1936년에 룡정으로 돌아와 광명중학에 편입하였다.
 
1937년 광명중학을 마친 그는 부친의 경성의전이나 세브란스의전 권유를 뿌리치고 1939년 봄에 서울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다. 국학 연구의 산실인 연희전문학교에서 최현배, 손진태, 이영하 등에게서 배웠으며, 한글로 된 정제된 시의 대부분도 이 시기이다. 
 
1941년 12월에 서울 연희전문학교를 마친 윤동주는 이듬해 일본에 건너가 처음에는 도꼬 릿교대학에 입학하였고, 동년 10월 그는 교오또 도오시샤대학 영문과로 전학하였다.
 
1943년 3월, 윤동주는 독립운동으로 2년형을 인도받고 일본 후꾸오까형무소에 수감되었으며,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불과 반년 앞두고 후꾸오까형무소에서 27세의 나이로 일제의 생체실험에 의한 후유증인 뇌일혈로 요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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