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문학] 주옥같은 시 모음(하늘/동행/날개/향수/어우렁더우렁/가난한사랑노래/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길이 끝나면/공터)
주옥같은 시를 포스팅합니다
겨울을 향하여 / 황동규 시인
저 능선 너머까지 겨울이 왔다고
주모가 안주 뒤집던 쇠젓가락을 들어 가리켰다
폭설이 허리까지 내리고
먹을 것 없는 멧새들 노루들이
골짜기에서 마을 어귀로 내려왔다고
이곳에도 아침이면 아기 핏줄처럼 흐르는 개울에
얼음이 서걱대기 시작했다고
알 든 양미리구이 안주로
조껍데기술을 마시며 생각한다
내 핏줄에도 얼음이 서걱대지는 않나?
텔레비전 켜논 채 깜박깜박 조는 초저녁에
잠 깨어 손가락 관절 하나 꼼짝하기 싫은 새벽에
그리고 이 술병, 마저 비울까 말까 저울질하는 바로 지금!
생각을 조금 흔든다
그래, 뾰족한 얼음 조각들이 낡은 혈관 녹 긁으며 흐르면
시원치 않겠나?
골짜기 가득 눈꽃이 이 세상 것 같지 않게 피어
보여줄 게 있다고 아슴아슴 눈짓하고 있는 설경 속으로
몸 여기저기서 수정구슬 쟁그랑쟁그랑 소리 나는
반 투명 음악이 되어 들어가 보자.
동행 / 혜원 전진옥
서로 다른 생각을 품어도
같은 곳을 향한 시선으로
함께 걸어가는 것
그대와 나
두 사람 나란히
삶의 여정을 걷는 것
바람에도 길이 있다 / 천상병 시인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길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날개 / 천상병 시인
날개를 가지고 싶다
어디론지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 싶다
왜 하나님은 사람에게
날개를 안 다셨는지 모르겠다
내같이 가난한 놈은
여행이라는 신혼여행뿐인데
나는 어디론지 가고 싶다
날개가 있으면 소원성취다
하나님이여
날개를 주소서 주소서......
잘못 들어선 길은 없다 / 박노해 시인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슬퍼하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삶에서 잘못 들어선 길은 없으니
온 하늘이 새의 길이듯
삶이 온통 사람의 길이니
모든 새로운 길이란
잘못 들어선 발길에서 찾아졌으니
때로 잘못 들어선 어둠 속에서
끝내 자신의 빛나는 길 하나
컴컴한 어둠만큼 밝아오는 것이니
겨울날의 희망 / 박노해 시인
따뜻한 사람이 좋다면
우리 겨울 마음을 가질 일이다
꽃피는 얼굴이 좋다면
우리 겨울 침묵을 가질 일이다
빛나는 날들이 좋다면
우리 겨울밤들을 가질 일이다
우리 희망은, 긴 겨울 추위에 얼면서
얼어붙은 심장에 뜨거운 피가 돌고
얼어붙은 뿌리에 푸른 불길이 살아나는 것
우리 겨울 마음을 가질 일이다
우리 겨울 희망을 품을 일이다
행복의 얼굴 / 이해인 수녀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한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내가 지금 행복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나에게 고통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마음의 문 활짝 열면
행복은 천 개의 얼굴로
아니
무한대로 오는 것을
날마다 새롭게 경험합니다
어디에 숨어있다
고운 날개 달고
살짝 나타날지 모르는
나의 행복
행복과 숨바꼭질하는
설렘의 기쁨으로 사는 것이
오늘도 행복합니다
길이 끝나면 / 박노해 시인
길이 끝나면 거기
새로운 길이 열린다
한쪽 문이 닫히면 거기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겨울이 깊으면 거기
새 봄이 걸어 나온다
내가 무너지면 거기
더 큰 내가 일어선다
최선의 끝이 참된 시작이다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
지금이 좋다 / 조미하 시인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나는 그냥 좋다
궂은날이라 생각하며
걱정이 앞섰던 지난날보다
순리대로 받아들이는 지금이 좋다
내탓이라며
다그치고 고민했던 시간들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음을
깨달은 지금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니
마음도 편해지고
모든 게여유로워
세상이 아름답다
작은 것에 감사하니
좋은 에너지가 넘쳐
웃음이 가득해서 좋다
지금이 좋다
내일도 분명 좋을 것이다
가난한 사랑 노래 / 신경림 시인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거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다시 시작하는 기쁨으로 / 이해인 수녀
첫눈, 첫사랑, 첫걸음,
첫 약속, 첫 여행, 첫 무대
처음의 것은
늘 신선하고 아름답습니다
순결한 설레임의 기쁨이
숨어있습니다
새해 첫날
첫 기도가 아름답듯이
우리의 모든 아침은
초인종을 누르며
새로이 찾아오는 고운 첫 손님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의
나팔꽃 같은 얼굴에도
사랑의 무거운 책임을 지고
현관문을 나서는 아버지의 기침 소리에도
가족들의 신발을 가지런히 하는
어머니의 겸허한 이마에도
아침은 환히 빛나고 있습니다
새 아침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
밤새 괴로움의 눈물 흘렸던
기다림의 그 시간들도
축복해 주십시오
"듣는 것은 씨부리는 것
실천하는 것은 열매 맺는 것"이라는
성 아오스딩의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가 너무 많이 들어서
겉돌기만 했던 좋은 말들
이제는 삶 속에 뿌리내리고 열매 맺는
은총의 한 해가 되게 하십시오
사랑의 용서와 기도의 일을
조금씩 미루는 동안
세월은 저만치 비켜 가고
어느새 죽음이 성큼 다가옴을
항상 기억하게 하십시오
게으름과 타성의 늪에 빠질 때마다
한없이 뜨겁고 순수했던
우리의 첫 열정을 새롭히며
다시 시작하는 기쁨으로
다시 살게 하십시오
게으름과 타성의 늪에 빠질 때마다
한없이 뜨겁고 순수했던
우리의 첫 열정을 새롭히며
다시 시작하는 기쁨으로
다시 살게 하십시오
보고 듣고 말하는 일
정을 나누는 일에도
정성이 부족하여
외로움의 병을 앓고 있는 우리
가까운 가족끼리도 낯설게 느껴질 만큼
바쁘게 쫓기며 살아가는 우리
잘못해서 부끄러운 일 많더라도
어둠 속으로 들어가지 말고
밝은 태양 속에 바로 설 수 있는
용기를 주십시오
길 위에 푸른 신호등처럼
희망이 우리를 손짓하고
성당의 종소리처럼
사랑이 우리를 재촉하는 새해 아침
아침의 사람으로 먼 길을 가야 할 우리 모두
다시 시작하는 기쁨으로
다시 살게 하십시오
고슴도치의 마을 / 최승호 시인
나비처럼 소풍 가고 싶다
나비처럼 소풍 가고 싶다
그렇게 시를 쓰는 아이와
평화로운 사람은 소풍을 가고
큰 공을 굴리는 운동회 날
코방아를 찧고 다시 뛰어가는 아이에게
평화로운 사람은 박수갈채를 보낼 것이다
산사태는 왜 한밤중에
골짜기 집들을 뭉개버리는가
곰은 왜 마을을 습격하고
산불은 왜 마을 가까운 산들까지 번져 오는가
한밤중에 횃불을 드는 마을의 소리
한밤중에 웅성거리는 마을의 소리
우리들은 고슴도치의 마을에서
온몸에 가시바늘을 키운다
평화로운 사람은 문을 걸고
잠 속에서도 곰에게 쫓길 것이다
우리들은 고슴도치의 집에서
돌담을 높이 쌓는다
평화로운 사람은 한숨을 쉬고
문풍지 우는 긴 겨울밤엔 장자를 읽으리라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춘수 시인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에 눈이 오면
샤걀의 마을의 쥐똥만 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어우렁 더우렁 / 한용운 시인
와서는 가고 입고는 벗고
잡으면 놓아야 할
윤회의 소풍 길에
우린 어이타 인연 되었을꼬
봄날의 영화
꿈인 듯 접고 너도 가고
나도 가야 할 그 뻔한 길
왜 왔나 싶어도 그래도
아니 왔다면 후회했겠지
노다지처럼 널린
사랑 때문에 웃고
가시처럼 주렁한
미움 때문에 울어도
그래도 그 소풍 아니면
우리 어이 인연 맺어졌으랴
한 세상 세 살다 갈 소풍 길
원 없이 울고 웃다가
말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단 말 빈 말 안 되게
어우렁 더우렁 그렇게 살다 가보자
눈이 내리네 / 박동수 시인
하얀 눈이 내려 쌓이고
하늘은 허허롭다
시름에 쌓인 가슴이
눈처럼 싸늘하게 식어가며
생각나는 사람
겹겹 쌓이는 눈 두께만큼
그리워지는구나
내리는 눈발 사이
너의 이름 기억하며
눈송이처럼 부드럽고
애틋함에 정겨웠던 그 얼굴
불러보고
또 불러보네
하늘 / 박두진 시인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러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공터 / 최승호 시인
아마 무너뜨릴 수 없는 고요가
공터를 지배하는 왕일 것이다
빈 듯하면서도 공터는
늘 무엇인가로 가득 차 있다
공터에 자는 바람, 붐비는 바람,
때때로 바람은
솜털에 싸인 풀씨들을 던져
공터에 꽃을 피운다
그들의 늙고 시듦에
공터는 말이 없다
있는 흙을 베풀어주고
그들이 지나가는 것을 무심히 바라볼 뿐
밝은 날
공터를 지나가는 도마뱀
스쳐가는 새가 발자국을 남긴다 해도
그렇게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하늘의 빗방울에 자리를 바꾸는 모래들
공터는 흔적을 지우고 있다
아마 흔적을 남기지 않는 고요가
공터를 지배하는 왕일 것이다
종소리 / 오장환 시인
울렸으면... 종소리
그것이 기쁨을 전하는
아니, 항거하는 몸짓일지라도
힘차게 울렸으며... 종소리
크나큰 종면(鐘面) 은 바다와 같은데
상기도 여기에 새겨진 하늘 시악시
온몸이 업화(業火)에 싸여 몸부림치는 것 같은데
울리는가, 울리는가,
태고서부터 나려 오는 여운...
울렸으면... 종소리...
젊으디 젊은 꿈들이
이처럼 외치는 마음이
울면은 종소리 같으련마는...
스스로 죄 있는 사람과 같이
무엇에 내딛지 않는가,
시인이여! 꿈꾸는 사람이여
나의 젊음은, 너의 바램은 어디로 갔느냐
쌀 노래 / 이해인 수녀
나는 듣고 있네
내 안에 들어와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뼈가 되는
한 톨의 쌀의 노래
그가 춤추는 소리를
쌀의 고운 웃음
가득히 흔들리는
우리의 겸허한 들판은
꿈에서도 잊을 수 없네
하얀 쌀을 씻어
밥을 안치는 엄마의 마음으로
날마다 새롭게
희망을 안쳐야지
적은 양이 쌀이 불어
많은 양의 밥이 되듯
적은 분량의 사랑으로도
나눌수록 넘쳐나는 사랑의 기쁨
갈수록 살기 힘들어도
절망하지 말아야지
밥을 뜸 들이는 기다림으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희망으로
내일의 식탁을 준비해야지
박각시 오는 저녁 / 백석 시인 (1912~1995)
당콩밥에 가지냉국의 저녁을 먹고 나서
바가지꽃 하이얀 지붕에 박각시 주락시 붕붕 날아오면
집은 안팎 문을 횅하니 열젖기고
인간들은 모두 뒷등성으로 올라 멍석자리를 하고 바람을 쐬이는데
풀밭에는 어느새 하이얀 대림질감들이 한불 널리고
돌우래며 팟중이 산 옆이 들썩하니 울어댄다
이리하여 한울에 별이 잔콩 마당 같고
강낭밭에 이슬이 비 오듯 하는 밤이 된다
※ 당콩 - 강낭콩, 돌우래 - 땅강아지, 팟중이 - 메뚜기
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시인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에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유리창 / 정지용 시인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아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열없이 - 어색하고 겸연쩍게
그의 반(半) / 정지용 시인
내 무엇이라 이름하리 그를?
나의 영혼 안의 고운 불,
공손한 이마에 비추는 달,
나의 눈보다 값진 이,
바다에서 솟아올라 나래 떠는 금성(金星),
쪽빛 하늘에 흰꽃을 달은 고산식물(高山植物),
나의 가지에 머물지 않고
나의 나라에서도 멀다
홀로 어여삐 스스로 한가로워 - 항상 머언 이.
나는 사랑을 모르노라, 오로시 수그릴 뿐.
때 없이 가슴에 두 손이 여미어지며
굽이굽이 돌아 나간 시름의 황혼(黃昏) 길 위
나 - 바다 이편에 남긴
그의 반임을 고이 지니고 걷노라
향수 / 정지용 시인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의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 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겨울 / 정지용 시인
강은 얼음장막 아래 잠자고 있다
그 속삭임은
겨울의 숨결로 인해 조용해졌습니다
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그들의 어깨는 눈으로 덮여 있었고,
조용한 땅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바람이 천천히 불어오는 이곳
고요함을 방해하지 않도록
그 노래는 낮은 윙윙거림
벌거벗은 가지를 상대로
이 계절의 엄숙한 은총에 대한 찬가입니다
겨울의 포옹 속에서
세상은 그 층을 벗고
진실의 뼈대를 드러내다
그 말은 조용히
추위에
인생은 지속됩니다
얼어붙은 땅도 꿈을 꾼다
심장이 희미하게 뛰고 있다
따뜻한 봄이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그럼 겨울,
결말이 아니야
하지만 잠시 쉬어가자
꽃이 피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