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문학] 나태주 시인의 시 모음
나태주 시인의 주옥같은 시 몇 편을 포스팅합니다.
풀꽃 1 / 나태주 시인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2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풀꽃 3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행복 / 나태주 시인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그리움 / 나태주 시인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만나지 말자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 너다.
놓아라 / 나태주 시인
우선 네 손에
쥐고 있는 것부터 놓아라
네가 보고 있는 것을 놓고
네가 듣고 있는 것을 놓아라
내친김에
네가 생각하는 것을 놓아라
무엇보다도 네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놓아라
그 위에 너 자신을 놓아라
비로소 편안해질 것이다
재회 / 나태주 시인
더 예뻐졌구나
반가움에
강물을 하나 네 앞에
엎을 뻔 했지 뭐냐.
그래도 / 나태주 시인
나는 네가 웃을 때가 좋다
나는 네가 말을 할 때가 좋다
나는 네가 말을 하지 않을 때도 좋다
뾰로통한 네 얼굴, 무덤덤한 표정
때로는 매정한 말씨
그래도 좋다
멀리서 빈다 / 나태주 시인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 나태주 시인
너,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오늘의 일은 오늘의 일로 충분하다
조금쯤 모자라거나 비뚤어진 구석이 있다면
내일 다시 하거나 내일
다시 고쳐서 하면 된다
조그마한 성공도 성공이다
그만큼에서 그치거나 만족하라는 말이 아니고
작을 성공을 슬퍼하거나
그것을 빌미 삼아 스스로를 나무라거나
힘들게 하지 말자는 말이다
나는 오늘도 많은 일들까지 견뎠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셈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오히려 칭찬해 주고
보듬어 껴안아 줄 일이다
오늘을 믿고 기대한 것처럼
내일을 또 믿고 기대하라
오늘의 일은 오늘의 일로 충분하다.
너,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부탁 / 나태주 시인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 말아라
사랑아
모습 보이는 곳까지만
목소리 들리는 곳까지만 가거라
돌아오는 길 잊을까 걱정이다
사랑아
바라건대 / 나태주 시인
내가 바라보는 흰 구름
너를 닮아서 예쁘고
네가 바라보는 나무들
너를 닮아서 싱싱하다
너를 바라보는 나
너를 닮아서 나도 또한
씩씩하기를 원하다.
사랑에 답함 / 나태주 시인
예쁘지 않을 것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 주는 것이 사랑이다
싫은 것도 잘 참아주면서
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아름다운 사람 / 나태주 시인
아름다운 사람
눈을 둘 곳이 없다
바라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니 바라볼 수도 없고
그저 눈이
부시기만 한 사람
세상일이 하도 섭해서 / 나태주 시인
세상일이 하도 섭해서
그리고 억울해서
세상의 반대쪽으로
돌아 앉고 싶은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숨어버리기라도 하고 싶은 날
네게 있었소
아무한테서도
잊혀지고 싶은 날
그리하여 소리 내어
울고 싶은 날
참 내게는 많이 있었소
선물 / 나태주 시인
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커다란 선물은
오늘입니다.
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당신입니다.
당신 나지막한 목소리와
웃는 얼굴, 콧노래 한 구절이면
한아름 바다를 안은 듯한 기쁨이겠습니다.
바람이 붑니다 / 나태주 시인
바람이 붑니다
창문이 덜컹됩니다
어느 먼 땅에서 누군가 또
나를 생각하나 봅니다
바람이 붑니다
낙엽이 굴러갑니다
어느 먼 별에서 누군가 또
나를 슬퍼하나 봅니다
춥다는 것은 내가 아직
숨 쉬고 있다는 증거
외롭다는 것은 앞으로도 내가
혼자가 아닐 거라는 약속
바람이 붑니다
창문에 불이 켜집니다
어느 먼 하늘 밖에서 누군가 한 사람
나를 위해 기도를 챙기고 있나 봅니다.
가을이 와 / 나태주 시인
가을이 와 나뭇잎 떨어지면
나무 아래 나는
낙엽부자
가을이 와 먹구름 몰리면
하늘 아래 나는
구름 부자
가을이 와 찬바람 불어오면
빈 들판에 나는
바람 부자
부러울 것 없네
가진 것 없어도
가난할 것 없네.
담소 / 나태주 시인
조금 늦게 찾아갔음을
굳이 후회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혼자 오래 살지 않아도
나이 들지 않은 향기로운 고요와
어여쁜 고독이 살고 있는 집
쉬이 날이 저물고 어두워짐을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구름 흘러 하늘에 몸을 품고
강물 흘러 바다에 몸을 던지 듯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이야기들
오래오래 기다리고 있는 집
내 안의 아름다움을 알아주는 사람과 맨발로 숲을 걷고 싶다
누군가 많이 외로운 사람 혼자 와서
적어 놓고 간 글귀
외로움은 인간을 병들게 하지만 때로
영혼을 맑고 깨끗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 나태주 시인(1945~ )
1945년 충남 서천 출생으로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 대표작으로는 시집인 "풀꽃", "행복" 등이 있다. 나태주 시인의 시는 간결하면서도 감성적인 언어로 소소한 일상과 자연의 풍경을 서정적으로 묘사하면서 아름다음을 담아내고 있으며, 그 안에 사랑과 지혜 등이 함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