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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 가을 시 모음 2

meta-verse 2024. 11. 18.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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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관한 주옥같은 시를 포스팅합니다.


들국화 / 천상병 시인
 
산등성 외따른 데
 들국화
바람도 없는데
괜히 몸을 뒤 뉘인다
가을은 
다시 올 테지
다시 올까?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
지금처럼 
순하게 겹친 이 순간이


가을 길을 걷고 싶습니다 / 향기 이정순
 
햇살이 다정히
잎을 쓰다듬는 가을 
심술쟁이 바람은 
가을을 어디로 보내려 합니다.

국화향기 그윽한 어느 카페에서
물 위에 둥둥 떠 갈 
길 잃은 낙엽의 슬픔이 젖어듭니다. 
 
왠지 마지막 이별인 듯 떠나지 못하고 
물 위를 이리저리 헤매며
외로움에 가을노래를 부릅니다. 
 
이런 날은 누구라도 만나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가을 길을 걷고 싶습니다.


 

들국화 / 나태주 시인
 
바람 부는 등성이에
혼자 올라서
두고 온 옛날은 
생각 말자고
갈꽃 핀 등성이에
혼자 올라서
두고 온 옛날은
잊었노라고
아주 아주 잊었노라고
구름이 헤적이는 
하늘을 보며
어느 사이
두 눈에 고이는 눈물
꽃잎에 젖는 이슬


 

가을밤 / 도종환 시인
 
그리움의 물레로 잣는 
그대 생각의 실타래는 
구만리장천을 돌아와
이 밤도 머리맡에 쌓인다.
불을 끄고 누워도
꺼지지 않는 가을밤
등잔불 같은 그대 생각
 
해금을 켜도 저미는 소리를 내며
오반죽 가슴을 긋고 가는 
그대의 활 하나
멈추지 않는 그리움의 활 하나
잠 못 드는 가을밤
길고도 긴데
그리움 하나로 
무너지는 가을밤


가을밤 / 나해철 시인
 
살아서 
열린 귀로 가을밤을 들을 수 있어
기뻤습니다

먹고 하는 일 보담
벌레 우는 소리가 더 가까워
고요히 엎드려 울 때
둥두렷이 달이 떠올랐습니다

몸을 구부린 채 저 산들은
또 어디론가 가는 것일까요

시간들은 별이 되어 하늘에 내걸리고 
맑아진 영혼의 한 조각을 데리고 

내 울음이 낙타가 되어
서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깨끗한 추억 속의 한 남자가 
먼 달빛의 한가운데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을이 익어간 날 / 양영희 시인
 
가을이다
흘러가는 구름만 보아도
괜스레 울컥해서
차마 눈을 감고 싶은 가을이다
 
푸르렀던 잎들도
가을 하늘 붉게 물들어간 
나신을 굽어보며
 눈시울을 붉히는 가을이다 
 
들판에 누렇게 고개 숙인 황금 벼도
햇살 가득 품었던 뙤약볕을 아쉬워하며
노을 속에 잠기어 든 가을이다
 
먼동 트기 전
밤새 내린 이슬방울 또르르 굴러
가을 하늘 마중하고
실구름 느리게 떠다니다
 
산 중턱에 눈물샘 묻어 놓고
나뭇잎 사이로 가을이 익어간다. 


가을 사랑 / 도종환 시인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에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 부는 저녁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가을을 짧아서 / 박노해 시인
 
가을은 짧아서
할 일이 많아서
 
해는 줄어들고
별은 길어져서
 
인생의 가을은 
시간이 귀해서
 
아 내게 시간이 더 있다면
너에게 더 짧은 편지를 썼을 텐데
 
더 적게 말하고
더 깊이 만날 수 있을 텐데
 
더 적게 가지고
더 많이 살아갈 수 있을 텐데
 
가을은 짧아서
인생은 짧아서
 
귀한 건 시간이어서
짧은 가을 생을 길게 살기로 해서
 
물들어가는 
가을 나무들처럼
 
더 많이 비워내고
더 깊이 성숙하고
 
내 인생의 결정적인 단 하나를 품고
영원의 시간을 걸어가는 
 
짧은 가을날의 
긴 마음 하나


 

서성인다 / 박노해 시인
 
가을이 오면 창밖에
누군가 서성이는 것만 같다
문을 열고 나가 보면 아무도 없어
그만 방으로 돌아와 나 홀로 서성인다
 
가을이 오면 누군가 
나를 따라 서성이는 것만 같다
책상에 앉아도 무언가 자꾸만 서성이는 것만 같아
슬며시 돌아보면 아무도 없어 
그만 나도 너를  따라 서성인다. 
 
선듯한 가을바람이 서성이고
맑아진 가을볕이 서성이고
흔들리는 들국화가 서성이고
남몰래 부풀어 오른 씨앗들이 서성이고
가을편지와 떠나간 사랑과 상처 난 꿈들이
자꾸만 서성이는 것만 같다
 
가을이 오면 지나쳐온 이름들이 
잊히지 않는 그리움들이 
자꾸만 내 안에서 서성이는 것만 같다. 
 


가을이라는 말에 / 이채 시인
 
가을이라는 말에
우수수 떨어지는 잎
가슴으로 낙엽이 쌓여 가네
 
가을이라는 말에
문들 흔들리는 나뭇가지
바람에 가을도 흔들리네
 
가을이라는 말에 
가슴이 내려앉네
낮은 곳으로, 낮을 곳으로
 
가을이라는 말에
하늘도 기울어
별들이 하얗게 쏟아지네


가을의 침묵 / 이남일 시인
 
인생은 가을볕처럼
잠깐 쐬다 가는 것
 
우리 서로
묻지 않으면 침묵하자
 
만남은 짧게
대화도 길지 않게
 
슬픔 따윈 우리
가슴 깊이 묻어 두기로 하자


가을이 가는구나 / 김용택 시인
 
이렇게 가을이 가는구나
아름다운 시 한 편도
강가에 나가 기다릴 사랑도 없이
 
가랑잎에 가을빛같이
정말 가을이 가는구나
 
조금 더 
가면 
눈이 오리
 
먼 산에 기댄 
그대 마음에 
 
눈은 오리
산은 
그려지리


 

가을 편지 / 오경옥 시인
 
가을이 오면 가슴이 먼저 길을 냅니다.
되돌아갈 수 없는 
아스라이 먼 오솔길
한걸음 한걸음 내딛다 보면
어설픈 옛 가을의 이야기
오솔오솔 그리움의 향기를 풉니다
 
들쑥날쑥한 새치
산등성이에 억새꽃으로 피어나는데
눈길 머무는 곳마다 서글픈 추억이 스며
고요한 떨림으로 깃을 세우는 예측불허의 감정
슬픔을 몰랐던 그 순순했던 몰입
 
한 해 두 해 가슴 깊어지는 말
사박사박 그리움 띄워봅니다.


가을 들꽃 앞에서 / 정심 김덕성  시인
 
갈바람이 불어오는 아침
청아한 바람이 말끔히 씻어주는 
마음마저 맑아지는 듯싶다
 
가을이 맛있게 읽는다
달콤한 향기로움으로 물들이고
꾸밈없는 그대로 소박함이
내 모습 초라해 보이고
 
가마솥 같은 폭염에
몸을 불사르며 자기를 지킨 들꽃
가을하늘을 가슴에 품은 너
행복이 찾아드는구나
 
내 작은 가슴에도
네 꽃향기에 감싸여 행복에 잠긴 나
가을바람에 살랑살랑거리는 
네 미세한 노래를 듣는다
사랑의 노래를 


가을 선물 / 혜원 전진옥
 
너른 화원에 꽃밭에는 
별처럼 수놓은 꽃무리들 
최고의 선물은 가을입니다.
 
가슴에 맑은 향기 터지고
절로 안겨드는 이 행복함
감사와 사랑입니다.


하늘이 파란 날 / 김용택 시인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한적한 풀밭에 길게 누워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며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 일 인지요
 
눈뜨면
눈 부시어요 당신 모습
저 하늘처럼 눈부시어 
살며시 눈을 감고
햇살을 얼굴 가득 받을 때
꼭 당신의 얼굴이 내게로 
환하게 포개져 와닿는 것 같아요
 
하늘이 파란 날 
한적한 풀밭에 누워
눈떴다 감았다 보고 싶은 당신
당신 생각으로 두 눈을 꼭 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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