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Q정전(아큐정전) 독후감 및 리뷰
시대적 배경
[명조 이후 중국 연표]
1368~1644년 : 명조
1644~1911년 : 청조
1911년 : 10월 10일 무창에서 신해혁명 발생, 12월 25일 손문이 영국에서 상해로 들어와 26일 임시대총통에 선출됨
1912년 : 2월 12일 선통제 퇴위와 함께 청조의 멸망, 3월 10일 원세개가 북경에서 임시 대총통에 취임하고 8월 국민당으로 개칭하였다.
1913년 : 7월 제2혁명(반원세개운동)이 일어났으며, 8월 손문은 일본으로 망명하였고, 11월 일본군이 청도를 점령한다.
1916년 : 6월 7일 여원홍이 대충통에 취임하면서 각 성 독립을 취소한다.
1917년 : 5월 여원홍 대총통이 단기서 총리를 파면하자 안휘·하남·봉천 등 각성 군벌이 독립을 선언한다.
1918년 : 군벌전쟁(남북전쟁, ~1928)
1919년 : 5월 4일 북경의 학생들이 항일 시위(5·4 운동)를 일으킨다.
1920년 : 7월 14일 안직 전쟁(안휘파 대 직례파)이 터진다.
1921년 : 7월 1일 상해에서는 중국 공산당이 결성되며, 제1차 전국대표대회가 개최된다(1전 대회, 상해)
1923년 : 2월 손문이 광동에서 대원수 취임하면서 제3차 광동정부가 시작된다.
1924년 : 1월 20일 국민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연소용공정책(제1차 국공합작)을 채택한다.
1925년 : 7월 1일 광동 국민정부 성립되며
1926년 : 11월 국민당의 좌파는 무한 천도를 결정한다.
1927년 : 4월 상해에서 장개석이 반공 쿠데타(4·12 쿠데타)를 일으키며, 10월 모택동은 강서성 정강산에 혁명근거지를 건설한다.
1928년 : 4월 북벌을 재개하며, 6월 북벌군이 북경에 입성하고 10월 8일 장개석이 국민정부 주석에 취임한다(~1931)
1931년 : 9월 8일 유조구 사건으로 만주사변이 발발하며, 11월 27일 강서성에 중화소비에트 공화국 임시정부(서금정부)가 수립된다(주석 : 모택동)
1932년 : 4월 서금정부는 대일 선전포고를 한다.
1933년 : 10월 국부군은 제5차 공비토벌에 나선다.
1934년 : 10월 15일 중국 홍군은 서금을 탈출하여 대장정에 나선다.(~1936년 10월)
1935년 : 12월 중공은 항일 민족통일전선을 제창한다.
1936년 : 12월 12일 서안사건(장학량이 장개석을 감금)이 발생한다.
1937년 : 7월 7일 노구교 사건으로 중일전쟁이 시작되며, 9월 23일 제2차 국공합작이 성립된다. 11월이 국민정부가 중경으로 천도하며, 12월 13일 남경이 함락된다. 그해 12월 북경에서 중화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다.
1941년 1월 태평양전쟁이 시작되며, 9월 장개석은 국민정부 수석에 취임하여 군정 양권을 장악한다.
1945년 :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였으며, 8월 16일 남경정부가 붕괴되면서, 11월 국공내전이 시작된다.
1946년 : 1월 10일 중경 정치협상회의 개최, 국곡 정전
1947년 : 2월 28일 대만에 반국민정부 폭동 일어나며, 7월 7일 본토에 중공이 연합정부 수립과 토지개혁 실시를 선언한다.
1948년 : 8월 19일 중공이 화북정부 수립을 선언하고, 12월 17일 인민해방군이 북경에 무혈입성하게 된다.
1949년 :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주석 : 모택동, ~1959)
1950년 : 1월 31일 중공군은 티베트를 제외한 모든 중국 본토의 점령을 선언한다. 2월 14일 모스크바에서 중·소 우호동맹 상호원조조약 조인하며, 10월 26일 중공군이 한국전쟁 개입하게 된다.
[시대적 배경]
아Q정전은 중국 작가 루쉰(1881.09.25.~1936.10.19.)이 1921년에 쓴 근대소설로, 그 당시 중국은 신해혁명으로 청 왕조가 붕괴되고 각 지역 군벌들이 난립하였으며 열강들의 침략으로 혼란기가 극심한 때였으며, 대외적으로는 열강들의 패권 다툼으로 제1차 세계대전(1914.07.28.~1918.11.11.)이 일어났으며, 일본은 러일전쟁으로 러시아 조차지 뤼순항과 남만주철도주식회사를 장악하여 만주를 넘보고 있었다. 한편 러시아에서 터진 공산주의 혁명의 물결이 중국 대륙에도 스며들어, 1920년에 사회주의자동맹을 시작으로 중국 공산당의 토대가 마련되는 시기였다.
루쉰의 아Q정전은 이런 20기 초 중국의 사회와 그 문화적 및 정치적 상황을 반영하는 작품으로, 보잘것 없는 날품팔이인 주인공 아Q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당시 중국의 허약하고 무기력한 사회현상처럼 자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왜곡 내지는 합리화시키며 자기기만적인 태도로 삶을 대하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그의 인생은 패배와 굴욕의 반복이지만 그는 항상 자신이 승리자라고 합리화하다가 신해혁명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억울하게 사형을 당하는 운명을 그린 작품이다.
이러한 특성은 당시 중국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패와 무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사회적 변화에 대한 절박한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참고로, 신해혁명은 1911년 10월 10일, 청나라가 철도를 외국의 손에 넘기려 하자, 군인들이 혁명파와 손잡고 우창에서 봉기를 일으켰는데 이 영향이 중국 전 지역으로 번져, 그 결과 중국 대부분의 지역이 청 왕조로부터 독립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1912년 1월 1일 난징에서 쑨원을 임시 대총통으로 하는 공화정인 중화민국 임시정부를 세운 것이 신해혁명이다. 이 신해혁명으로 진시황 이후 2000년 이상 존재했던 군주제가 없어지고 중국 최초의 근대적 공화제가 들어선 것이다.
줄거리
주인공 아Q는 성명과 본적뿐만 아니라 그의 과거 행적마저도 확실치 않은 데다 주거지도 없어 마을의 사당 안에 살고 있었다. 또한 일정한 직업도 없어 날품팔이 등을 하면서 생활하고 있었다.
한편, 아Q는 자존심이 무척 강하여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의 안중에도 없었다. 특히 상대가 약해 보이면 욕을 퍼붓고 덤벼들어 폭행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본인보다 강한 건달들한테는 놀림과 구타를 당하는데, 구타를 당해도 "나는 자식 놈에게 맞은셈이다"라고 자위하며 합리화한다.
제삿날 밤 노름판에서 딴 돈을 다 잃어버려도 자식 놈이 가져간 셈 치자고 자위도 하고, 나는 벌레다라고 자위도 하는데, 신통치 않으면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힘껏 자기 뺨을 두세 차례 연거푸 때려, 때린 것은 자신이요, 맞은 것은 역시 자신이었지만 그는 마치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본 것만 같이, 곧 패배를 승리로 돌려 만족하곤 한다.
동쪽에서 뺨 맞은 아Q 는 서쪽에서 화풀이하듯이 애꿎은 비구니인 여승을 괴롭히고 만족스러워한다. 여승은 "이 자손의 씨도 못 받을 아Q놈!"이라고 하면서 울먹이며 떠났는데, 아Q의 귀에는 이 말이 귀에 박힌다.
자손이 없으면 죽어도 밥 한 사발 얻어먹을 수도 없으니 여자가 있어야 한다. 무릇 불효에 세 가지 있으니 그중 자손이 없는 것이 가장 크며, 죽은 후에 영혼은 굶고는 견디지 못한다고 하니 이렇게 된다면 또한 인생의 큰 비애가 아닌가..
이후 아Q는 조 영감 댁의 하녀인 오씨아줌마에게 추근대다 욕설과 함께 얻어맞고 조영감한테 쫓기다가 지보한테 술값으로 넉냥을 지불하고 다섯 조항에 서약까지 한 후 겨우 무마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이후 마을에서도 아Q를 멀리하고 일용직이지만 일자리조차도 다 잃게 되면서 아Q는 마을을 떠나게 되며 성으로 들어간다.
성으로 들어간 후 한참이 지나서 다시 마을에 나타난 아Q는 예전과 달리 누더기 옷도 입지 않았고 외관상으로도 부유한 차림이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아Q의 중흥사를 알고 싶어 했는데, 특히 거인영감 댁에서 일을 했다는 사실에 듣는 사람 모두 숙연해지고 거인영감 댁에서 일을 거들어주고 있었다는 자체로만으로도 존경받았다.
이 무렵 마을 사람들의 눈으로 본 아Q의 지위는 조영감 이상이라고는 감히 말할 수 없었겠지만, 거의 동등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머지않아 이 아Q의 명성은 온 마을의 규중까지 퍼졌다.
조영감이 좋은 물건 있으면 후하게 쳐줄 테니 제일 먼저 달라고 하는데 승낙은 하는데 꺼림칙하게 가버리니 수재가 그 태도에 격분하여 "이런 은혜도 모르는 놈은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할 수만 있다면 지보에게 일러서 그를 미장에서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상책이야!" 하고 말했으나 조영감은 점잖게 훈계했다. " 그렇지 않다. 그런 짓을 하면 원한을 사게 될 뿐, 하물며 이런 장사를 하는 놈이란 대개 `매는 제 둥지 밑의 먹이는 먹지 않는다`하니 이 마을에선 근심할 필요가 없고, 다만 각자가 밤중에 경계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수재는 이 훈계를 그럴듯하게 여겨 아Q 추방 제의를 즉각 철회했다.
마을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함부로 굴지는 않았지만 피하려는 눈치가 역력했다. 약간 두려워하는 눈치가 더 많이 섞여있었다. 그런데 일부 건달들이 아Q의 내막을 자세히 알고 싶어 꼬치꼬치 캐물었는데 이렇게 해서 아Q의 전후사정을 알게 된 것이다. 즉, 아Q는 좀도둑질을 했으며 두 번 다시 도둑질할 용기마저도 없는 좀도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야말로 두려워할 것도 못 되는 존재라는 것이 밝혀졌다. 일이 이렇게 되자 미장에서는 모두들 아Q가 나쁘다고 말했다.
신해혁명 이후 아Q는 혁명당은 반역이며 반역은 그를 곤란케 하는 것이라는 일종의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혁명당을 매우 미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흰 투구에 흰 갑옷을 입은 청나라 왕조를 무너뜨리려는 혁명당 사람들이 마을로 들어왔고 백리 사방에 이름이 알려진 거인 영감 등 많은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보면서 아Q도 마음이 흔들려 `혁명도 좋구나`하고 아Q는 생각했다. `그래, 이 나쁜 놈들을 모두 죽여 버려라, 더러운 놈들!.. 나도 항복해서 혁명당이 되어야지.`
어찌 된 셈인지 갑자기 자기는 혁명당이고 미장 사람들은 모두 그의 포로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무의식 중에 큰 소리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혁명이다! 혁명이다!"
미장 사람들은 모두 공포의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가련한 눈초리란 아Q가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것이었다. 그걸 보자 그는 한여름에 빙수를 마신 것처럼 속이 후련했다.
그러나 양선생이라는 사람에 의해 혁명당 입당이 거부되었고, 이제부터는 결코 흰 투구를 쓴 흰 갑옷의 사람이 그를 부르러 올 가망이 없는 것이다. 그의 모든 포부·의지·희망·전도는 전부 말살되어 버렸다. 그는 이제까지 이런 안타까움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혁명을 허락하지 않고 네놈만 혁명할 셈이지? 개돼지 같은 양놈. 어디 두고 보자. 네놈이 혁명을 했겠다! 혁명은 목이 잘리는 죄야. 내 어떻게 해서든지 고소해서 네놈이 관청으로 잡혀 들어가 목이 댕강 잘리는 꼴을 보고 말테니. 네놈의 재산도 전부 빼앗기게 될 거야. 댕강, 댕강!"
그러다가 어느 날 아Q가 새벽에 혁명당 사람들이 조영감댁을 약탈해 가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조영감댁이 약탈당한 후 미장 사람들은 대부분 통쾌함과 동시에 두령움을 느꼈다. 이것은 아Q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나흘 후 아Q는 밤중에 갑자기 체포되어 성안으로 끌려갔다. 관청에서 아Q가 도둑무리의 일부라고 보고 아Q를 잡아 감옥에 가둔 것이다. 하지만 아Q는 사람이 살다 보면 감옥에 갈 때도 있지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적극적으로 변호하지 않는다. 즉 관청에서 아Q에게 약탈한 일행을 말하라고 하지만 약탈에 가담하지 않았기에 모른다고만 말한다. 그러자 관청에서는 아Q에게 자신의 죄을 인정 한다고 적힌 종이를 주면 서명하라고 한다. 아Q는 무슨 뜻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생전 처음 잡아본 붓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려다 수박씨 같은 동그라미를 그린다.
긴 두루마기를 입은 여러 사람과 짧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별안간 그에게 무명으로 된 흰 등거리를 입혔다. 거기에는 무슨 검은 글자가 씌어 있었다. 아Q는 대단히 기분이 나빴다. 왜냐하면 그것은 상복을 입는 것과 같았으며, 상복을 입는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양손은 뒤로 묶였고 곧장 관청 밖으로 끌려 나왔다. 아Q는 포장 없는 수레에 태워졌다. 짧은 옷을 입은 몇 사람이 그와 함께 같은 자리에 탔다. 앞에는 총을 멘 병사와 자경단원이 있고, 양쪽에는 많은 구경꾼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아Q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나 순간 깨달았다. 이것은 목을 잘리러 가는 길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그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귓속이 멍해져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정신을 잃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조급해지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도리어 태연해졌다. 그는 사람이 태어나 살다 보면 때에 따라서는 목을 잘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현재의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는다.
아Q는 갑자기 배짱이 없어 노래 한 곡도 부르지 못하 것이 퍽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의 생각은 마치 회오리바람처럼 머릿속을 휘저었다. `청상과부의 성묘`는 무게가 없고, `용호상쟁`중의 `후회해도 소용없다`도 힘차지 않다. 역시 `이놈, 내 쇠 채찍을 들고 네놈을 때려눕힐 테다`로 하자 그와 동시에 손을 쳐들려고 했으나 비로소 손이 묶여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쇠 채찍...`도 부르지 않았다. 수레는 쉬지 않고 전진했다. 아Q는 군중 속에서 이리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아Q가 갈채하는 사람들을 죽 둘러보는 그 순간 그의 머리는 또 회오리바람처럼 머릿속을 선회했다.
4년 전, 그는 산기슭에서 굶주린 이리 한 마리를 만났었다. 이리는 가까이 오지도 않고 멀리 떨어지지도 않은 채 어디까지고 그의 뒤를 따라와 그를 잡아먹으려 했다. 그는 그때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았지만 다행히 손에 도끼 한 자루를 들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믿고 간신히 미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이리의 눈빛은 영원히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것은 불길하고도 무서웠으며 반짝반짝 도깨비불처럼 빛나는 두 눈이 멀리서 그의 육체를 꿰뚫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는 여태껏 보지 못했던 두려운 눈을 본 것이다. 그것은 둔하고 또 날카로워 벌써 그의 말을 씹어 먹었을 뿐 아니라 또 그의 육체 이외의 무엇인가를 씹어 먹으려는 듯 언제까지고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그의 뒤를 따라오는 것이었다. 이런 눈동자들이 합쳐졌나 싶더니 벌써 그곳에서 그의 영혼을 물어뜯고 있었다.
"사람 살려...,..."
그러나 아Q가 그 말을 하기 전에, 그는 이미 눈앞이 캄캄해지고 귓속은 멍해져 마치 전신이 작은 티끌같이 날아서 가루처럼 산산이 흩어지는 듯함을 느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총살형을 받았다.
"총살은 목을 자르는 것만큼 볼 만하지 않더군. 더구나 그렇게 시시한 사형수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오랫동안 거리를 끌려 다니면서도 끝내 노래 한 곡 부르지 못하다니, 구경꾼은 괜히 헛걸음만 쳤어!"
이러면서 아Q가 사형을 당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독후감
아Q정전은 루쉰이 당시의 무지몽매한 민중들을 계몽시키기 위해 지은 소설로 주인공 아Q를 통해 당시 중국인들의 노예근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주인공 아Q는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쓸데없이 자존심만 강해서 자신의 부족함을 합리화시키고 실패를 승리로 착각하는 비합리적인 행태를 보인다. 또한 강자에게는 약하면서도 약자에게는 괴롭힘 등을 통하여 자신이 받은 차별 등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것들이 당시 중국인의 무지와 후진성 및 국민성을 아Q라는 캐릭터를 통해 빗대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아Q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마을 사람들은 아Q가 총살당한 것은 아Q가 나쁘다는 증거이다. 나쁘지 않았다면 왜 총살을 당했겠어?라는 마을사람들의 말은 그들의 노예근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장면이다. 그들은 아Q의 죽음의 원인에 대해 의심이나 궁금증도 없이 하나의 구경거리로 생각할 뿐인 그런 모습도 당시 중국인의 우매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당시 중국의 사회적 상황하에서 본다면, 자신들에게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매사에 합리화에 급급하며 타인에게 돌리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는 시대상과도 같다.
아Q정전은 비극적인 결말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는 그 이상의 당시 중국인들이 직면한 빈곤과 교육의 부족으로 인한 무지 그리고 전통적 가치에 대한 갈등을 행간에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아Q의 자기기만적인 태도 즉 쓸데없는 자존심이 개인적인 발전을 저해하고 결국에는 파멸로 이어지는데, 이는 개인과 사회가 현실을 직시하고 진지하게 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운명적으로 불행한 결과가 초래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루쉰은 이 작품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자신과 사회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의 이런 메시지는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에도 적용되기에 시대를 초월한 문학작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단순한 역사소설이 아닌 모든 시대의 독자들에게 자아성찰을 할 수 있게 하는 메시지를 담은 소설로,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개인적·사회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도록 일깨워 주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작가 소개
마오쩌뚱이 중국의 만리장성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던 아Q정전의 작가 루쉰(1881~1936)은 중국 근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사회운동가이며 혁명가이다. 유년기에는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서당에서 유교와 역사를 배웠으며 특히, 탁본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13세 때 조부가 뇌물사건으로 감옥에 가고, 16세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집안이 기울기 시작했다. 1902년 학당을 졸업한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의학을 공부했으나 일본인에 의해 중국인이 무참히 살해되는 영상을 보고 크게 분노하여 건강한 신체보다는 정신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 문예야말로 정신을 변화시키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는 것을 깨닫고 의학을 포기한다. 즉,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문학을 통해 동포의 정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한편, 이 시기에 중국에서는 신해혁명과 함께 과학과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봉건 문화와 유교를 비판하는 문학혁명이 진행되고 있었다.)
루쉰의 아Q정전은 1921년 베이징의 천바오 신문에 연재한 것으로, 날품팔이 노동자의 아Q를 통해 중국의 봉건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하고 비판한 내용이다. 그 당시 중국 현실을 비판하는 동시에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특징으로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은 소설이다.
[참조문헌]
- 아Q정전(저자: 루쉰, 출판사: 해성 북)
- 나무위키
- 네이버 지식백과